[씨줄날줄] 원명원(圓明園) 보물/이용원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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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05-01 00:00
입력 2008-05-01 00:00
청나라 황제 건륭제가 쓰던 의자 겸 침상인 나한상(羅漢床)이 중국 고가구 경매사상 가장 비싼 3248만위안(약 46억원)에 팔렸다는 소식을 엊그제 신화통신이 전했다. 나한상은, 청 황제들의 별장인 원명원(圓明園)에서 사용한 물품으로 추정된다. 이 뉴스에 접하고서 프랑스가 아직도 무단 보유한 우리의 외규장각 도서를 떠올린 건 두 중요 문화재의 운명이 엇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원명원은, 강희제가 1709년 수도인 베이징성에서 서북쪽으로 10㎞쯤 떨어진 곳에 세운 이궁(離宮)이다. 그의 손자인 건륭제가 즉위해 대폭 증축한 뒤로 역대 황제들이 사생활을 즐기는 장소로 삼았다. 이국(異國) 취미가 있어 외국여인을 궁중에 들이곤 했던 건륭제는 원명원 안에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건물을 따로 짓기도 했다. 이번에 팔린 나한상은 서양 꽃인 달리아를 새겨넣는 등 로코코 양식으로 제작됐는데, 이도 건륭제의 취향과 관련 있을 것이다. 원명원은 황제들의 별장이자 금은보화·서화·골동품·서적 등을 모아놓은 보물창고였다. 역사학자 가운데는 원명원이 당시 세계 최고의 미술관 겸 도서관이었으리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이 원명원이 1860년 불길에 싸여 사라졌다. 베이징에 침입한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소장품을 철저히 약탈한 다음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 침략에 여념이 없던 구미 열강은 꼬투리만 잡으면 군사를 동원했다. 영·불연합군의 베이징 침입도 청나라가 불평등조약을 거부했다는 게 이유였다. 원명원 보물 약탈은 나흘동안 진행되었는데, 특히 프랑스군이 대부분을 탈취했다고 한다.‘운반할 수 있는 물건은 모조리 빼앗아갔다.’는 만행을 끝내고 원명원에 불까지 지른 까닭은,‘대약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진순신의 ‘중국의 역사’ 중에서)

원명원 보물인 나한상이 경매에 나오게 된 경위야 상세히 알 수 없지만, 원명원 약탈의 주범이 프랑스라는 점에서 우리의 외규장각 도서를 떠올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문화 약탈 대국’ 프랑스는 언제나 외규장각 도서를 원주인에게 돌려줄까.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8-05-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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