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2007년의 말/육철수 논설위원
육철수 기자
수정 2007-12-31 00:00
입력 2007-12-31 00:00
올해도 신체발부 가운데 입의 활약은 단연 두드러졌다. 정권교체기인지라 정치권의 ‘말 홍수’는 끌어모으기조차 버겁다. 대선의 승부를 가른 이명박 당선자의 “한방이 아니라 헛방”은 향후 직위에 걸맞게 2007년 어록의 맨 앞에 등재됐다. 연초 대통령 4년중임제안 와중에 터져나온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참 나쁜 대통령”은 단순·명쾌한 말로는 으뜸이다. 언변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노무현 대통령의 활약도 변함 없었다.“대못질” “그 놈의 헌법” “깜도 안 되는 의혹”은, 뭇 글쟁이한테 유행어 사용 로열티를 일일이 받았다면 노 대통령은 떼돈을 벌었을 것이다.
남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인간적 신뢰를 무너뜨리며, 백해무익한 독설과 말장난이 난무한 가운데 청량제가 된 말도 많다. 지난 10년간 월세방에 살면서 30억원을 사회에 내놓은 가수 김장훈씨는 “행복해지려고 기부한다.”고 말해 감동을 선사했다. 자선재단을 출범시킨 프로골퍼 최경주씨는 “빈 잔은 비어 있어야 한다.”며 버림과 비움의 미학을 깨우쳐 주었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선 승복” 연설은 복마전같은 한국 정치에 그래도 한줄기 희망이 남아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말로 인한 탈이 유난했던 정해년이 저물고 있다. 메러비언의 연구가 맞다면, 말은 많이 해봤자 효용은 별로다. 더구나 분란을 일으키는 말은 입만 피곤하게 할 뿐이다. 부처님의 입을 금구(金口)라고 부르는 이유는 중생을 향한 자비로운 미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새해엔 우리 모두 금구까진 못 되더라도,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말들로 어록을 장식하길 기대해 본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07-12-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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