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범죄 피해자 지원 국가가 나서야/김용세 대전대 법학과 교수
수정 2006-08-16 00:00
입력 2006-08-16 00:00
이 이야기가 보도될 즈음 14세 소녀의 육체와 정신을 파괴하고 한 가정을 붕괴시킨 강간범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었다. 아이가 제 몸을 팔아 어머니의 약값을 대고 동생들과 끼니를 이어가는 동안 범인은 ‘국립호텔’에서 공짜로 먹고 자며 지냈던 것이다.
성범죄뿐만 아니다. 모든 범죄의 피해자가 다양한 형태의 육체적·정신적 또는 경제적 고통에 시달린다. 가족이 살해된 유족의 고통은 말할 나위도 없고 상해 피해자도 대부분 상처의 고통에 더해 치료비도 직접 부담해야 하는 고통에 부닥친다. 절도 피해자는 물건을 도둑맞은 것 외에도 불안감 때문에 잠금장치를 교체하고 이사까지 가는 등 물질적 피해가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범인을 검거하고 처벌하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피해자의 입장을 배려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가해자에게 징역형이 선고되면 국가가 그를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지만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혜택과 지원이 없다.
서구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처럼 불합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우리나라도 1988년부터 범죄피해자 구조제도를 도입했다.90년대에는 성폭력 범죄와 가정폭력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 제도도 마련했고 관련 민간단체에는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2003년부터는 경찰, 검찰과 법원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의 피해자 보호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며 범죄피해자보호법도 제정됐다.
하지만 현행 피해자 구조제도는 실효성이 없는 상징적 제도에 불과하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 재원 부족이다. 우리도 선진국에서처럼 매년 징수되는 벌금의 일부를 이용해 피해자 기금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범죄 피해자에게는 정신·심리적 지원이 경제적 부조보다 더 중요하지만 정부의 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부분에 대해선 전문적 역량을 갖춘 민간단체가 함께 참여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정신·심리적으로 상담지원을 해줘야 한다. 현재 지원대상이 주로 성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자에 한정되어 있거나 피해자 문제의 특수성에 부응할만한 전문 인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관련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등이 각각 관련 조직에 따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예산낭비와 비효율을 피하기도 어렵다.
이제는 우리도 피해자 관련 민간단체 지원을 하나의 정부조직이 통괄하도록 함으로써 부처 이기주의로 인한 예산낭비와 비효율을 제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무고한 범죄 피해자가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리거나 평생 회복할 수 없는 불행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이끌어야 할 것이다.
김용세 대전대 법학과 교수
2006-08-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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