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어머니의 항아리/이호준 뉴미디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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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6-04-03 00:00
입력 2006-04-03 00:00
그녀는 종갓집 며느리였다. 젊어서 홀로 된 뒤 기울어 가는 가세를 잡으려 안간힘을 다했지만, 여자 혼자로는 벅찬 일이었다. 더구나 하나뿐인 아들, 종손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감에 남은 가산도 털어 넣고 말았다.

그녀는 죽기 직전 객지에 있는 아들을 불렀다.“물려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하지만 저 항아리들은 꼭 챙겨다오. 네 할머니와 내가 쓰던 것들이다. 잘 두었다가 네 색시가 생기면 전해다오.” 좀 황당했지만, 아들은 장례를 치른 뒤 항아리를 서울로 싣고 왔다. 그리고 보관하기 좋은 집을 찾아 몇번 이사를 했다.



후배가 들려준 얘기다. 그의 낡은 연립주택 옆집에 총각이 이사를 왔는데, 항아리들이 베란다를 가득 채우고도 남아 문밖까지 진출했더란다. 그걸 치워달라고 갔다가 들은 사연이라는 것이다.“물려준 어머니나 갖고 다니는 아들이나 좀 이상하지 않아요?” 후배의 뒷말을 귓전으로 들으며 자꾸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물려받은 ‘항아리’는 어디로 갔을까. 진짜 소중한 걸 잃어버리고 사는 건 아닐까.

이호준 뉴미디어국장 sagang@seoul.co.kr
2006-04-0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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