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늙은 소가 전하는 말/이호준 뉴미디어국장
수정 2006-03-24 00:00
입력 2006-03-24 00:00
그래, 아비는 이가 빠지고 근육이 풀려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하지만 최소한 너만큼은, 아비 뺨에 흘러내리는 한 줄기 눈물 외면하지 말아라. 아들아, 이 아비의 목에 무거운 멍에 얹혀지고 뜨거운 햇살 아래 숨이 가빴던 날, 그날들이 있어 너는 그늘 아래 노래할 수 있었느니. 내 떨리는 네 다리와 옹이 박힌 어깨 있어 네 어린날들 감미로울 수 있었느니.
나는 알 수 있다. 그날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내 정수리에 날카로운 정 하나 깊숙이 박혀들고, 내 골수 허공에 목화송이처럼 흩날리는 날…. 아들아, 내 혀 굳고 동공 풀리기 전에 이 말을 남긴다. 지금의 네 우람한 근육 단단한 발굽 우렁찬 목소리는 풀잎 끝에 맺힌 이슬만도 못한 것. 항상 귀 기울여 들어라. 바람이 전하는 진리의 말을.
이호준 뉴미디어국장 sagang@seoul.co.kr
2006-03-2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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