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유럽의 자존심/이목희 논설위원
이목희 기자
수정 2005-11-30 00:00
입력 2005-11-30 00:00
미국 행정부의 매파들은 자국내 인권론자들의 간섭이 귀찮다. 이 때문에 미국이 테러용의자를 마음놓고 문초하기 위한 비밀수용소를 세계 곳곳에서 운영하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최대 30곳에 이른다고 뉴욕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휴먼라이츠퍼스트는 밝혔다. 쿠바 관타나모 기지,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 등 확인된 수용소만 13곳. 수륙양용 공격함 2척에도 이동수용소를 만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밀수용소에서 테러용의자 신문은 주로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에 의해 이뤄진다. 미 ABC방송에 따르면 6가지 고문기술이 사용된다고 한다. 발가벗긴 뒤 냉방에 넣고 찬물 끼얹기, 거꾸로 매단 뒤 비닐로 감싼 얼굴에 물 붓기 등이다. 가장 효과적인 고문 방법은 수갑과 족쇄를 채운 채 40시간 이상 세워놓기라는 것이다. 테러용의자는 대부분 알카에다 연루자 등 이슬람권 출신이다.
미국의 비밀수용소 운영이 큰 곤경에 처했다. 미 CIA가 수용소를 가동하는 나라에 동유럽국가가 포함되어 있다고 이달초 워싱턴포스트지가 보도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인권존중, 자유민주주의가 태동한 지역이다. 수백년간 종교·인종간 전쟁을 겪으면서 포로·반란군에 대한 반인륜행위 금지를 규정한 제네바협약을 만들어 냈다. 인권을 무시하는 수용소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는 유럽인권규약도 있다. 미국이 유럽의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린 셈이다.
유럽연합(EU)은 미국에 비밀수용소 운영을 허용한 사실이 드러난 회원국에 대해 각료회의 투표권을 정지시키는 조치를 취하기로 하는 등 강경일변도다. 미 부시 행정부는 새달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유럽에 보내 해명에 나서기로 했다.‘인권보장의 원조’ 유럽이 미국의 말만 듣고 문제를 덮진 않을 것이다. 차제에 비밀수용소는 폐쇄하고, 수용자들에게 일반 전쟁포로에 준하는 대우를 한다는 약속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내기 바란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2005-11-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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