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통계의 양날/우득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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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득정 기자
수정 2005-10-29 00:00
입력 2005-10-29 00:00
21세기 가장 주목받는 천재 경제학자인 미국 시키고대학의 스티븐 레빗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가짜’라고 주장한다. 그는 누가 반론을 제기할라치면 통계 숫자를 들이밀며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단언한다.‘경제학계의 인디애나 존스’로 불리는 그는 기존의 학자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당연한 상식을 통계를 동원해 뒤집어엎는 것이 취미다. 그래서 그가 새로 밝혀낸 것이 ‘부동산 중개업자는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돈은 선거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일부 교사와 스모 선수는 승부(성적)를 조작한다.’‘낙태 합법화가 범죄율 하락의 직접적인 이유다.’ 등이다.

그는 특히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2만명이 넘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달성과정을 추적한 결과, 가족 구성원의 화목 정도, 주변 환경, 맞벌이 여부, 아이의 TV 시청 정도 등은 학업 성취도와 별다른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통계로 입증했다. 반면 부모의 교육이나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다거나 입양 여부, 첫 아이 출산시 어머니의 나이 등은 아이의 성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아이의 학업 성취도는 후천적 환경이나 노력보다 선천적인 요인이 절반 이상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동의하든 않든 그가 통계로 입증한 결과다.

레빗의 주장을 반박하려면 인용된 통계나 분석방법에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접근해야 하지만 아직 경제학계에서는 맞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의 옆방을 연구실로 쓰려는 경제학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통계는 이처럼 자신의 주장에 신빙성을 부여하는 강력한 무기다. 같은 주장도 숫자를 곁들이면 훨씬 그럴듯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통계가 몸값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올 들어 토지와 주택 소유 통계에서부터 하루만에 번복 소동이 빚어진 비정규직 통계에 이르기까지 숫자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덧칠을 하려 한 탓이다. 그러다 보니 성장률이나 국가 채무 등 동일한 숫자를 두고 여권과 야당이 상반된 주장을 펴며 쌍심지를 켠다. 결국 애꿎은 숫자만 죄인으로 내몰린다. 그러나 숫자도 당하고 있지는 않는다. 아전인수식 통계 해석은 잘못된 정책으로 이어져 파멸을 낳는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2005-10-2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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