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임진왜란 당시 접반사의 역할을 돌아본다

서동철 기자
수정 2026-10-20 08:16
입력 2026-10-20 00:00
명나라 장수 수행·접대한 직책
그동안 역사학계 관심 적었지만
남원성 순절 정기원 본격 연구
‘접반사 고뇌’ 더 많이 알려져야
명나라 군대가 참전한 임진왜란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명나라가 출병해 조선을 살린 전쟁이 아니라 조선이 참혹한 피해를 감수하고 왜적을 가로막아 명나라의 멸망을 지연시킨 전쟁으로 보고 있다. 최소한 조선과 명나라가 국체를 보전하는 데 도움을 주고받은 전쟁으로 설명하는 게 실상에 가깝다고 믿는다. 그러니 명나라 장수의 온갖 치다꺼리를 감수했던 접반사(接伴使)는 억울함을 감수해야 했다.접반사는 필요에 따라 주로 고위직 관리를 차출해 임명한 임시직이었다. 중국 사신이나 장수를 수행하면서 의전 및 교섭을 담당하는 자리다. 왜란 때는 특히 명군이 요구하는 군량 및 말먹이, 군수물자를 충족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컸다. 무관들이 왜적과 싸웠다면 접반사로 임명된 문관들 역시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 명나라 장수들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는 것과 다름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접반사’는 모두 884차례 등장한다. 선조실록에 503차례, 선조수정실록에 15차례다. 왜란 당시 접반사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했다. 그런데 명나라 장수는 긍정적으로 그려지기보다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사례가 많다. 뇌물을 요구하는 명나라 장수를 다독이는 것도 접반사의 몫이었다.
임시로 겸직한 접반사는 고위직을 지낸 인물의 인생 전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 주목받지는 못했다. 당사자들도 명나라 장수의 생떼에 가까운 요구에 시달리고 화풀이 대상이 됐던 과거를 굳이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현산 정기원(1559~1597)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는 것은 접반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늦었지만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정기원 관련 연구에서 우선 흥미로웠던 것은 ‘주량이 바다와 같다’는 대목이었다. 후손 정언충이 지은 신도비명에는 승정원 주서 시절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야대(夜對)에서 임금이 술을 하사했는데, 취하여 예의를 잃은 이가 많았으나 공은 홀로 자세를 어지럽히지 않아 특명으로 6품 사헌부 감찰로 벼슬이 올랐다. 선조가 단순히 주량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절제를 잃지 않는 완숙한 품성을 높이 평가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정기원을 접반사로 등용한 것도 주량과 절도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을 듯싶다.
정기원은 1585년 문과 급제 이후 순절하기까지 12년 만에 종2품 예조참판에 올랐다. 그가 대명외교에 본격적으로 나선 이후 고속 승진은 불차채용(不次採用)으로 전라좌수사에 오른 이순신 장군을 연상시킨다. 정기원은 1591년 11월부터 명나라에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다녀왔다. 북경에 머물던 이듬해 4월 왜란 발발 소식에 정기원은 사은사 신점에게 “조정의 명은 없을지라도, 명나라에 군사를 청해 위급한 사태를 구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이후 궁궐 정문에서 피가 나도록 머리를 짓찧으며 대신들에게 간청했다.
이후 정유재란의 기운이 높아지자 조정은 명나라에 전황을 알리고 구원병을 청할 적임자로 정기원을 선임한다. 그는 1596년 10월 1일 정사인 고급주문사(告急奏聞使)로 임명된 당일 사행길에 올랐다. 정기원이 북경에 머물던 이듬해 2월 5일 왜군이 다시 조선에 침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명나라는 조선 파병에 부정적이었는데 정기원은 황제의 하사품을 “차라리 굶어 죽을지언정 받을 수 없다”고 거부하며 지속적으로 파병을 촉구했다고 한다.
1597년 5월 8일 양원이 명나라 총병으로 군사 3000명을 이끌고 한양에 왔다. 조정은 대명 외교에서 거둔 성과를 떠올리며 정기원을 접반사에 임명한다. 병자호란의 최대 비극 남원성 전투의 전말은 다시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남원성이 왜적에 함락되기 직전 탈출한 양원은 한양으로 올라가 선조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고 한다. “남원성이 포위됐을 때 정기원은 홀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피하도록 권했음에도 듣지 않았으니, 그는 참된 의사(義士)입니다.” 내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선 정기원 선생을 주제로 학술 세미나가 열린다. 왜란 당시 접반사의 역할은 우리에게 좀더 알려져야 할 것 같다.
서동철 논설위원
2026-10-2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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