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on] 지도를 접고 현미경을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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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수정 2026-10-19 01:34
입력 2026-10-19 00:56
“작가의 일은 그저 작은 것들을 알아차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큰 것들을 알아차리는 건 데카르트 같은 사람의 일이죠.”(앤 카슨, 2024년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과의 인터뷰 중에서)

지난 8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캐나다 시인 앤 카슨이 호명됐을 때 안도감과 반가움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한국시간 기준 매번 저녁 8시에 발표되는 노벨상 소식을 다음 날 신문에 집어넣으려면 기사 마감을 무척 촉박하게 해야 한다. 카슨은 다행히 한국에 책이 소개될 때마다 빠짐없이 따라 읽었던 작가였다. 문장도 여러 차례 곱씹어 본 터라, 카슨의 세계를 넉넉하고 여유 있게 소개할 수 있겠다 싶었다.

스웨덴 한림원 연락 이후 카슨은 한 인터뷰에서 “이 모든 게 말도 안 된다. 다들 미친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역사와 대중을 의식한 거장은 으레 자기 연출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카슨에게서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격식은커녕 평범한 사람처럼 어리둥절해하는 노(老)작가의 면모를 보며 작은 미소를 지어 보기도 했다.

소탈함에 감탄하던 차, 카슨이 어느 대담에서 했다는 말이 겹쳐서 다가왔다. 오늘날 작가는 다만 ‘작은 일’에 집중할 수 있을 뿐이라고. 큰일은 앞서 ‘데카르트 같은 사람들’이 다 해놨으므로, 우리는 그 위에 아주 작은 것을 덧대면 된다고. 부담이 줄어들어 홀가분하면서도 한구석에 아쉬움도 피어오른다. 나는 고작 작은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걸까.

우리는 모두 큰일을 하려고 한다. 대학원생들이 헤매는 주된 이유는 ‘논문 한 편으로 세상을 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시인·소설가를 지망하는 습작생이 자주 하는 실수는 ‘작품 하나에 모든 걸 담아내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중심에 ‘나’를 놓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큰일에 목을 맨다.

카슨은 여기에 경종을 울린다. 작은 일을 알아차리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내 세상의 중심에 타자(他者)를 놓으라는 요청이다. 나의 시야에 포착되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재단하거나 ‘없는 것’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윤리적 호소다. 다른 이의 일상을 내 안으로 가지고 올 때 세상은 비로소 낯설게 보인다. 여기서 ‘다른 이’는 인간만 해당하지 않는다. 인간의 테두리를 넘어서 있는 모든 존재를 아우른다. 그제야 우리는 알아챌 수 있다. 평온한 것같이 보이는 이 세계가 실은 수많은 균열을 품고 있음을.

‘작은 일’은 분명 작은 일에 불과하다. 다만 ‘작은 일을 알아채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그것은, 그동안 큰일에 골몰하느라 주변의 ‘작은 일’을 살피지 못했던 인간의 맹목(盲目)을 반성하는 일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포부도, 하나에 모든 걸 담아내려는 열정도 실현되지 못할 꿈만은 아니다. 다만 그것들은 ‘작은 일’ 안에 있다. “차 한 잔에 우주가 담겼다”는 불가(佛家)의 가르침도 있지 않나. 그리고 이는 문학만의 일도 아닐 것이다. 지도를 접고 현미경을 들자. 고요 속에서 꿈틀거리는, 미세하고 치열한 움직임을 보자.



오경진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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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진 문화체육부 기자
오경진 문화체육부 기자
2026-10-1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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