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섭의 클래식 한마디] 99세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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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6-10-14 00:57
입력 2026-10-14 00:09
음악가는 학자나 시인처럼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다. 하지만 정년이 정해진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현실 무대에서 은퇴하게 된다.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많은 기악 연주자와 성악가는 60~70대에 이르면 연주 활동을 줄이거나 은퇴를 고민하게 된다. 기악 연주자는 빠르고 어려운 패시지를 실수 없이 처리하기 어려워지고, 성악가는 고음을 내기 어려워지거나 긴 음을 안정적으로 지속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관객은 기량이 떨어진 연주를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80대나, 심지어 90대에도 어느 정도의 체력과 정신력이 뒷받침된다면 가능한 음악가가 있다. 바로 지휘자다.

지휘자에게 씨름해야 할 대상이 둘 있다면 아마 악보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일 것이다. 악보는 그대로지만 지휘자는 경험이 쌓이면서 과거에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한다. 리허설, 연주, 공부 그리고 인생의 경험은 음악을 달리 읽게 만든다.

여기까지는 다른 연주자나 성악가도 마찬가지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자신의 육체를 직접적으로 사용해 소리를 내기 때문에 생물학적인 노화를 극복하기 어렵다. 지휘자라고 늙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신체적 한계를 다른 연주자들과 달리 오랜 경험과 리허설로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다.

지휘자에게 오케스트라와의 리허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원들은 해당 악기의 전문가들이고, 자신이 맡은 부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휘자는 모든 부분을 꿰뚫고 있어야 하며 이를 지휘로 보여 줘야 한다. 총보(전체 악보)를 보며 밤을 새워야 한다. 악단과 함께 좋은 연주를 계속 들려줘야 일이 계속 주어진다. 그렇지 못하면 실업자 신세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극복한 극소수 지휘자들의 음악에서는 평생의 연륜이 묻어나온다. 단원을 이끌어가는 리더십도 능숙하다. 노대가에게 보내는 단원과 관객의 존경심은 덤이다.

아직도 은퇴하지 않은 백수(白壽·99세)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가 90대 초반에 녹음한 브람스 교향곡 1번과 2번은 어느 연주에서도 듣지 못한 유연함과 아름다움에 세부 묘사까지 가득하다. 90세에 지휘를 그만둔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는 은퇴 직전 30대에 수석지휘자를 맡았던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에 돌아가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지휘했다. 매우 느린 템포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노장의 관록 덕분이다.

지휘자도 나이가 들면 예전처럼 말도, 동작도 빠를 수 없다. 하지만 경험이 많아질수록 오케스트라를 빨리 파악해 그들에게 맡길 것과 자신이 챙길 것을 구분하게 된다. 리허설에서 챙겨야 할 일과 무대에서 해결해도 좋을 일을 구분한다. 블롬스테트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젊을 때에는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저 전체적인 틀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다른 리더들도 이를 깨닫는다면 훨씬 더 나은 리더가 될지도 모르겠다.

양창섭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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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섭 음악칼럼니스트
양창섭 음악칼럼니스트
2026-10-1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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