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삼성전자 ‘100조 시대’가 불안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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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연 기자
송수연 기자
수정 2026-10-13 10:02
입력 2026-10-13 01:01

1980년대 반도체 주인공 일본
관련 산업 쇠락까지 10년 걸려
세계 최고 자부심에 안주 말고
새 시장 열 차세대 기술 만들길

한국 산업이 이렇게 세계 무대의 ‘주인공’ 자리에 선 적이 있나 싶다. 삼성전자는 최근 3분기 107조 4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세계 기업사에 남을 기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8월 말 일본을 찾았을 때는 현지 취재진이 구름떼처럼 몰렸다. 반도체 공장 투자 계획에 대한 ‘말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서였다. 지난여름부터 엔비디아와 오픈AI, AMD 등 미국 빅테크 최고경영자들이 한국을 잇따라 찾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다. 시장에서도 유례없는 이런 호황이 계속될까 의구심이 여전하다. 영원한 1등은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인공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당시 소련 견제를 위한 미국의 기술 지원을 등에 업었다. 이후 뛰어난 품질을 앞세워 미국 메모리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죽겠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일본이 세계 경제·질서를 주도하는 ‘팍스 니포니카’에 대한 두려움까지 퍼졌다.

그런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쇠락하기까지 딱 10년이었다. 1980년대 말 세계 반도체 시장의 90%에 달하던 일본의 시장 점유율은 1998년 20%까지 곤두박질쳤다. 흔히 일본 반도체의 몰락 이유를 미국의 미·일 반도체협정 등 통상 압박에서 찾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일본의 쇠퇴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가장 큰 과오는 혁신을 잊은 ‘안주’였다. 일본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때 산업의 중심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D램과 다른 ‘플래시’, ‘낸드’ 메모리가 탄생하고, PC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바 등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기존 방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기존의 제조 경쟁력과 시장 지배력이 미래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현재 한국 상황은 당시 일본과 분명히 다르다. 미국 기업들은 한국 반도체를 과거 일본처럼 견제할 상황이 아니다. 현재 세계 반도체 산업은 설계·장비·파운드리·메모리·패키징 등 국가와 기업별로 분업화된 구조다. 과거 미국 기업들이 일본 반도체의 시장 잠식을 막아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면, 지금은 한국 기업의 공급망을 확보하려 경쟁 중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역설적으로 한국의 약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를 만들고 있다. 반면 그 메모리가 들어가는 인공지능(AI)의 핵심 시장과 플랫폼은 미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AI 가속기와 소프트웨어, 거대언어모델, 클라우드 등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영역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적다. 현재 한국 산업 경제력이 AI 산업 중 반도체 일부에 의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기존 제품의 수익성이 높을수록 익숙한 사업에 안주하기 쉽다. 그러나 반도체 시장의 승자는 지금 가장 많은 이익을 내는 기업이 아니다. 다음 시장을 열 기술을 먼저 준비한 기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 호황을 차세대 메모리와 이종집적·첨단 패키징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 가야 하는 이유다. 갑작스러운 겨울이 닥칠 때를 대비해 메모리 의존도를 낮출 사업 다각화에도 나서야 한다. 이미 세계 반도체 산업은 분업화에서 각국·기업의 전방위 경쟁 체제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정부 역시 전력·용수 등 인프라 확충을 서두르는 한편 역대급 세수를 기반으로 반도체 호황 이후를 이끌 성장동력 발굴에 나서야 한다.

일본이 반도체를 호령하던 시대에도 경고의 목소리는 있었다. 일본 전성기의 상징인 소니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는 “일본 기업들이 경제적 효율성과 시장 성공만을 추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기존 방식을 버리지 못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경계해야 할 건 결국, 몰락 직전까지도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에 갇혀 있던 모습이다. 지금의 성공에 안주하는 순간, 언제든 역사의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밀려날 수 있다.



송수연 산업부 기자(차장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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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연 산업부 기자(차장급)
송수연 산업부 기자(차장급)
2026-10-13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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