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레버리지 세상의 정상인
박소연 기자
수정 2026-09-10 01:44
입력 2026-09-10 00:47
하루 60% 수익에 가치투자 무색
12억이 20억…울며 은행 앱 켠다
레버리지 세상, 평범하면 바보 된다
A씨는 기업 실적을 따져 가며 주식을 샀다. 집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빚을 내야 한다고 믿었다. 욕심내지 말고 오래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착실하게, 교과서적으로.출근길에 주식창을 열었는데 100만원이 넘는 묵직한 대장주 SK하이닉스가 눈앞에서 날아가고 있었다. 130만원대에서 170만원대로, 29.95%. 상한가였다. 놀랍다. 그런데 이건 뭐지? 59.93%. SK하이닉스 주가를 두 배로 따라가는 레버리지 상품의 수익률이었다.
레버리지. 원래 뜻은 지렛대다. 금융에서는 빚이나 파생상품으로 수익과 손실을 몇 배로 키우는 것을 말한다. 본주가 30% 오르니 이를 2배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60% 오른 것이다. 전날 1주만 샀더라도 하루 만에 80만원을 손에 쥐었단 얘기다. 백주 대낮에, 정규장에서.
A씨는 계좌를 열었다. 기업 실적을 공부하고 적정 주가를 따져 고른 종목들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연 10%만 벌어도 훌륭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가치투자, 장기투자, 분산투자. 평소 믿었던 말들인데 유난히 고리타분하게 들린다. 지겹다.
퇴근길이다. 늘 지나치던 동네 부동산 중개업소 유리창에 붙은 숫자가 이상하다. ‘○○래미안 84㎡ 20억’.
20억원? 작년까지만 해도 12억원 언저리였던 앞 단지다. 8억원짜리 집에 살지만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고 생각해 서두르지 않았다. 똘똘한 한 채 지역이 아니니 집값이 오를 이유가 별로 없었다. ‘저렇게 오를 수가 없는데….’ 휴대전화를 꺼내 부동산 앱을 켰다. 18억, 19억, 20억. 잘못 본 게 아니네.
정부는 빚내서 집을 사지 말라며 대출을 틀어막았다. 투기꾼을 잡겠다던 대책이 왜 나를 잡는 거지? 강남 부자들이 곡소리 나는 줄 알았는데 왜 내가? 집값 잡는 게 계곡 정비보다 쉽다더니 결국 대출만 잡았다. 그 결과는 가진 사람과 아닌 사람 간 수억원의 격차로 돌아왔다.
A씨는 부동산 앱에서 검색 조건을 ‘12억원 이하’로 맞췄다. 몇 달 전까지 눈여겨보던 아파트들이 지도에서 우수수 사라졌다. 앱을 껐다. 빚을 참은 대가가 더 큰 빚이라니. 은행 앱을 켰다. 얼마까지 빌릴 수 있지. 이제는 영끌해서라도 어디든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너무 늦었더라도 더 늦기 전에 올라타야 할 것 같다. 울화가 치민다.
화가 쌓여 지지율을 할퀸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한국갤럽 기준 7월 초 54%였다. 7월 둘째 주 53%, 셋째 주 52%로 내려오더니 8월에는 40%대로 떨어졌다. 이달에는 40% 아래까지 내려왔다. 두 달여 만에 15% 포인트 넘게 빠졌다. 지지율도 레버리지에 올라탄 듯 말이다.
이유도 낯설지 않다. 부정 평가 이유 1위는 부동산 정책(23%), 2위는 경제·민생(11%)이었다. 기대를 타고 높이 올랐던 지지율은 실망이 쌓이자 빠르게 미끄러졌다. 지렛대는 올라갈 때만 작동하지 않는다.
A씨는 그사이 눈높이가 달라졌다. ‘적당히’가 성에 차지 않는다. 주가가 하루 1% 오르면 시시하다. 연 3~4% 수익률에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 집값이 소득만큼 천천히 오르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연 10%면 만족한다던 사람이 이제 ‘2X’를 들여다본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빚지겠다던 사람이 대출 한도를 바짝 당길 생각을 한다. 어제까지 무모하다고 생각했던 선택이 오늘은 뒤처지지 않기 위한 선택이 됐다.
그래도 손이 쉽게 가지는 않는다. A씨는 ‘정상’을 되새기며 주식창을 닫았다. 부동산 앱도 닫았다. 은행 앱까지 닫으려다 손가락이 잠깐 멈춘다. 주식이 또 오르면 어떡하지. 저 20억원짜리 아파트가 21억원이 되면 어떡하지. 혼탁한 ‘레버리지 세상’에 사는 정상인 A씨를 정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박소연 디지털금융부 차장
2026-09-1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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