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가방 해진 것만 봐도 슬프지만, 에둘러서… 타인의 슬픔 어루만지다
이슬기 기자
수정 2018-12-28 01:55
입력 2018-12-27 22:42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어머니 어머니’하며 성숙한 줄 알았던 형은 결정적 순간엔 ‘엄마’ 하고 울었다. 만날 엄마만 찾던 동생은? 이번엔 형을 찾았다.
슬프다. 사무치도록 슬프다.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쓴 슬픔 공부학자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쓴 발문 때문인지 슬픔이 더욱 구체화된다. 박준의 새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다.
이번 시집에서는 ‘슬픔’ 중에서도 ‘나’보다는 타인의 슬픔에 집중했다는 게 시인의 설명이다. 시집 제목이 담긴 시 ‘장마-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같은 데서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식이다. 그러나 굳이 전작들과의 차이를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일 같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울어도 된다고 했던 그 감성은 그대로 이어지니까. “학교 다닐 때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너는 왜 만날 이런 시만 쓰냐’ 그래서 다른 시를 써 갔더니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게 자기 잘하는 거 두고 딴 거 하는 놈’이라고.”
박준의 시어(詩語)는 보통 사람에게서 온다. “쥐어뜯으면서 쓰는 말도 있지만 별 생각 없이 한 말인데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말이 있어요. 별거 아닌 말인데 이 말은 어떤 문장을 만나면 말보다 훨씬 커지겠구나, 하는 것들.” 그런 말들을 가만가만 굴려 가며 만드는 게 그의 시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노래도 안 나오는 이어폰을 끼고서 가만히 타인의 소리를 수집한다는 그다.
문 닫은 식당을 보고, 남의 가방 해진 거 보고도 슬프면 ‘진지충’ 소리 딱 듣기 좋은 시대. 그런 시대에 왜 시인의 시가 흥할까. “누구에게나 진지가 있어요. 근데 그게 너무 갑자기 툭 튀어나오면 진지충 소리를 듣죠. 너무 급격하게 심해로 내려오거나 갑자기 올라오면 탈이 나잖아요? 그러지 않게 빙빙 돌면서 어떤 감정의 심연으로 가는 것. 공교롭게도 제 문장이 그런 식이네요?”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며 에둘러 말하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박준의 시를 찾는 이유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18-12-28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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