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로마규정 20주년을 맞이하여/권오곤 국제형사재판소 당사국총회 의장
수정 2018-07-16 23:02
입력 2018-07-16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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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이 제정된 7월 17일은 국제형사법적으로도 제헌절에 못지않게 중요한 날이다. 20년 전인 1998년 7월 17일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120여개국 대표가 모여 ‘로마규정’이라는 다자조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반인도 범죄, 집단살해 등을 처벌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설립됐다. 여기서 말하는 재판소는 그 안에 판사로 구성된 재판부뿐만 아니라 검사로 구성된 검찰부와 변호인단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현재 로마규정에 가입한 나라는 123개국이다. 그러나 아직은 국제형사재판소가 전 세계 모든 나라에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같이 큰 나라들이 불참하고 있다. ICC는 팔다리가 없는 거인이라는 조롱도 듣는다. 그럼에도 그동안 국제적 정의와 인권보호에 ICC가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첫째, ICC는 우간다 내전,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수단 다르푸르 사태 등의 책임자들을 법정에서 단죄했다. 현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무력분쟁 등 10개의 사태에 대해서도 예비조사를 진행 중이다.
둘째, 로마규정과 ICC는 국가지도자에게 인권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켰다. 로마규정상의 범죄는 시효가 없고 범죄자가 국가원수라고 해서 면책되지 않는다. 사법권을 비롯해 한 나라 안의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절대 권력자조차 반인도 범죄 등을 저지를 경우 안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대규모 반인도 범죄의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셋째, ICC는 응보적 정의에서 더 나아간 회복적 정의를 세계 앞에 시연하고 있다. 가령 2008년부터 콩고민주공화국 및 우간다의 범죄 피해자 50여만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신체적·정신적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피해자신탁기금을 조성해 피해자의 손해를 배상하고 있다.
넷째, 특히 로마규정 채택 20주년이 되는 올해 7월 17일에는 로마규정상의 침략범죄(crime of aggression)가 발효됨으로써 세계평화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ICC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로마규정이 제정될 당시에도 국가 사이에 치열한 대립으로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한국이 제안한 중재안이 타협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송상현 재판관은 ICC 소장을 지내기도 했고 그 뒤를 이어 2015년에 정창호 재판관이 선출돼 현재까지 재판을 하고 있다. 필자도 2017년 12월부터 ICC 당사국 총회의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진정한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나라 안과 밖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활동이 동시에 벌어져야 한다. 최근 촉발된 예멘 난민을 둘러싼 논쟁에서 보듯 국제화가 심화된 오늘날에는 국제적 정의의 문제와 국내적 정의의 문제가 별개일 수 없다.
제헌 70주년과 로마규정 20주년이 같은 날이라는 공교로움이 새삼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 제헌절이다.
2018-07-1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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