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살해·시신유기 환경미화원은 ‘리플리’ 꿈꿨나
강경민 기자
수정 2018-03-19 14:46
입력 2018-03-19 14:44
진단서 위조해 동료 휴직 처리·딸들에겐 용돈 보내고 목소리 위조
톰 리플리의 삶은 가짜였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자신을 무시하던 부자 친구 필립을 살해한 다음부터 가짜 삶이 시작됐다.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0년 작품 ‘태양은 가득히’의 내용이다.
15년 지기 동료를 살해한 환경미화원은 행태는 이 영화의 주인공 리플리와 닮디 닮았다.
동료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환경미화원은 알리바이가 필요했다.
평소 피해자와 가장 가깝게 지냈기에 의심이 곧 자신에게 뻗칠 것을 직감했다.
그는 ‘아예 처음부터 동료가 죽지 않은 것처럼 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곧 실천했다.
지난해 4월 동료를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소각한 환경미화원 A(50)씨는 경기도 한 병원의 도장이 찍힌 진단서를 위조했다.
병명은 허리디스크. A씨는 진단서와 함께 숨진 동료 B(59)씨 이름이 적힌 휴직계를 팩스로 구청에 제출했다.
진단서가 첨부된 휴직계를 받은 구청은 아무런 의심 없이 5월부터 B씨가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구청의 의심’을 해결한 A씨는 다음 목표를 가족으로 정했다.
A씨는 생전 B씨가 술자리에서 ‘아내와 이혼하고 딸들에게 가끔 생활비를 보내준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곧 B씨 휴대전화로 딸들에게 ‘아빠는 잘 있다’, ‘생활비는 있니?’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받은 B씨 딸들은 아버지가 동료의 손에 살해된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A씨는 B씨 딸들이 더는 의심하지 못하도록 한 번에 60만원씩 3차례에 걸쳐 생활비를 보냈다. 대학교 등록금도 기간에 맞춰 입금했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A씨는 평소처럼 출근해 차를 타고 마을을 돌며 쓰레기를 수거했다.
‘태양은 가득히’처럼 A씨도 동료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리면 전화를 받아 연기했다.
A씨의 치밀한 범행으로 가족과 지인 누구도 B씨가 이미 살해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살해된 채 쓰레기봉투에 담겨 불태워진 B씨는 이후로도 일 년 넘게 휴직 중인 환경미화원이자,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로 존재했다.
완전범죄를 꿈꿨던 A씨 범행은 술집에서 B씨 카드를 사용하면서 꼬리를 잡혔다.
범행을 의심한 경찰은 A씨 원룸을 압수수색해 B씨 신분증과 위조한 진단서, 혈흔이 묻은 가방 등 증거를 찾아냈다.
동료를 살해한 잔혹한 환경미화원이 쓴 선한 가면이 일 년 만에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태양이 가득히’에서도 시신을 묶은 줄이 요트에 끌려와 리플리의 범행이 탄로 난다.
A씨는 “나는 B씨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잡아뗐으나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기 전 모든 것을 실토했다.
그는 “술자리에서 B씨가 내 가발을 잡아당기고 욕설을 했다. 홧김에 목을 졸랐다”고 털어놨다.
경찰은 살인과 시신유기 혐의로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며, 시신 훼손 여부와 범행 동기 등을 조사 중이라고 19일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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