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기생등(妓生燈) 축제/정기홍 논설위원
수정 2014-10-10 00:09
입력 2014-10-10 00:00
경남 진주에서 조선의 16명 기생을 등(燈)으로 환생시킨 흥미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들의 삶의 자취에 맞춰 4개 코너로 나눠 전시했다. 의열(義烈)코너는 진주의 관기 논개, 을사늑약 매국노인 이지용을 꾸짖은 진주기생 산홍, 홍경래난 때 결사대를 조직한 가산기생 연홍이 자리하고 있다. 열정(熱情)에는 천하절색 송도기생인 황진이와 남자들을 치마 앞에 꿇린 도도했던 한양기생 초요갱, 전 재산으로 아사 직전인 백성을 구한 제주기생 만덕도 재현됐다. 사랑(愛)과 이별(離)코너에선 퇴계 이황이 죽자 수절을 택한 단양기생 두향, 율곡 이이를 사랑했던 황주기생 유지가 각각 잔잔한 등불을 밝힌다.
진주는 평양과 함께 기생문화가 흥한 고장이다. 평양기생인 계월향과 진주의 논개로 대별하며 지금도 ‘북(北) 평양 남(南) 진주’란 말로 오르내린다. 평양의 기생학교는 어린 예비 기생이 수백명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다고 한다. 경술국치(1910년) 이후 두 지역에는 제법 큰 기생조합인 권번(券番)이 생겨 교육과 함께 관리를 했었다. 1970~80년대 대학가에서 애창했던 ‘울도 달도 없는 집에 삼년을 살고 나니···’로 시작되는 ‘진주난봉가’도 기생 문화에서 비롯됐다. 모진 시집살이의 아내가 사랑방에서 오색 안주를 놓고 기생 첩을 끼고 노는 남편 모습을 보고 목을 맨 뒤 남편이 “첩의 정은 삼년이고, 본처 정은 백년”이라며 후회하는 가사는 애잔하다. 기생을 논할 때 냉면도 빼놓아선 안 된다. 본래 냉면은 기생의 야참이었다. 민속 서적들은 ‘냉면의 제일은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라 적었다. 진주에는 의기(義妓)가 많다. ‘푸른 남강 위에서 일본 적장에게 양귀비보다 더 붉은 절개를 보였던’논개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촉석루의 논개 사당 의기사(義妓祠)에는 ‘(논개와 달리) 일 없는 세상에 태어나 북소리에 아무렇게나 놀고 있음’을 한탄한 산홍의 글이 걸려 있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4-10-1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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