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국민연금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수정 2012-10-25 00:52
입력 2012-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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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논쟁이 한창인 지금 국민연금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한때 보험료 내봤자 연금 못 받는다며 기피대상 1호였던 국민연금이 이처럼 주목의 대상이 된 배경은 두둑한 자금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80조원 이상의 적립금을 보유한 국민연금은 어느새 세계 3대 연금으로 성장했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빠른 속도로 기금 규모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연금 기금을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저출산과 높은 노인빈곤율 외에도 우리 사회에는 쉽게 해결하기 힘든 여러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과 질 낮은 일자리 양산으로 인한 소득 양극화가 대표적인 예다. 날로 심화되는 소득 양극화가 근로기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노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처럼 모든 연령층에서의 소득 양극화 심화는 정부 개입을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통합 및 국민들의 높아지는 복지 욕구에 일정부분 부응하기 위한 재정지출 증가 압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거세질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래 연금급여로 지출될 돈을 앞당겨 쓰자는 주장은 미래세대에 대해 할 도리가 아닌 것 같다. 현재도 재원 조달이 어려워 미래 연금급여로 지출될 돈을 앞당겨 쓰자는 주장이 나오는 마당에, 노인인구가 급증할 미래에는 써야 할 돈이 더욱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국민의 노후를 차입금에 의존하던 국가들의 불행한 사례를 목도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 남유럽 국가들이 방만한 연금재정 운영으로 인해 심한 홍역을 앓고 있다. 여러 유혹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이 빚 없는 경영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대목이다. 특히 앞날이 우울한 저성장, 저출산, 고령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국민연금을 앞당겨 쓰자는 논의보다 ‘저부담 고급여’ 및 평균수명 증가로 인해 초래될 연금 재정 불안정 해소 방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시급한 배경이다.
우리 세대 노인 빈곤 문제는 우리 세대의 능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국민연금기금은 우리 세대를 위한 돈이 아니다. 지금 많은 돈이 쌓여 있다 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아닌 것이다. 우리보다도 훨씬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우리 미래세대에게 남겨 주어야 할 최소한의 종잣돈일 뿐이다. 후세대를 위해 기금에 손 대지 않는 대신, 적지 않은 분들이 빈곤에 노출된 현재의 노인세대에게는 양해를 구해야 한다. 잘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우리 앞에 닥쳐올 인구고령화라는 거센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가용한 범위 내로 비용 지출을 최대한 억제할 수밖에 없다고. 지금보다 더 튼튼하게 기금을 쌓아 우리보다 훨씬 암울할 세상에서 살아갈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안타깝지만 형편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좀 더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을 더 많이 보살펴 드리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솔직히 말씀드려야 한다.
국민연금은 금 나오라고 두드리면 금이 나오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지금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오히려 채무 청구서만 날려 보낼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될 수 있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 국민연금이 국민을 어렵게 만드는 궁민연금(窮民年金)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정신을 바싹 차리고 지켜보아야 할 때이다.
2012-10-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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