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白石의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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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10-16 00:00
입력 2003-10-16 00:00
이른 새벽 승용차 라디오에서 누군가가 백석(白石) 시인의 시를 소개하고 있었다.‘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처음 들어보는 시로 제목부터가 낯설었다.광복 전 창백한 한 지식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백석이 자야(子夜)라고 이름지은 한 여인을 그린 시이며,그 자야라는 여인은 우리도 잘 아는 법정 스님의 길상사와 깊은 인연이 있다는 소개가 이어졌다.‘가볍게 만나,쉽게 헤어지는 것이 요즈음 세태인데,시 속에 영원히 살아있으니 참 고운 인연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절의 변화는 사소한 것에도 우리를 감상에 젖게 한다.계절의 선물인가.그러나 자야는 세상을 버리고 백석을 쫓아가진 않았다.남과 북으로 헤어져 살다 생을 마쳤으니.시의 아름다움이 다가선 아침이었다.

양승현 논설위원
2003-10-1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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