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를 살리자](2)오리온전기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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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7-23 00:00
입력 2003-07-23 00:00
한때 세계 6위의 브라운관 생산업체였던 이 회사는 최근 대구 공단 지역의 중소기업인들 사이에 널리 회자된다.생산과 매출이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다. 중견기업이지만 한계에 도달한 기업의 구조조정이 직원들의 저항에 부딪혀 기업 자체의 생존이 어려워진 전형적인 케이스로서다.노조의 파업이 이어지고 이어 매출 감소,회사 부도로 치달은 것이다.법원의 강제 구조조정에 따라 다음달초까지 이 회사는 생산직 근로자 수백명 정도를 내보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4일 기자가 방문한 공장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공장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근로자들의 얼굴빛은 어두워 보였다.
생산라인 정문을 들어서자 왼쪽 출입구엔 ‘ORI-8 라인’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이 건물안은 불이 꺼져 대낮인 데도 캄캄했고,넓은 공장안은 오싹할 정도로 고요했다.1개 라인의 근로자 300여명이 3교대로 일해 공장이 24시간 돌아가던 곳이었으나 멈춰 선 컨베이어벨트엔 조립하다 만 브라운관들이 나란히놓여 있었다.가동을 멈춘 지 3∼4개월이 지나 브라운관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조립 로봇은 긴 팔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1969년 국내 최초로 TV용 흑백 브라운관을 생산한 이 기업은 세계적인 브라운관 업체들에 밀려 경쟁력을 잃었다.여기에다 대우그룹 해체로 98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오리온전기는 매출부진과 자본잠식이 표면화됐다.회사는 작년 8월 사업개편과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노조는 여기에 강하게 반발,3개월간 파업을 벌였다.이 과정에서 회사측은 인력 구조조정을 철회했지만 이미 기업체질은 크게 약화되었다.올들어 이라크전과 화물연대의 파업 여파로 20여개국에 대한 수출이 타격을 입어 결국 지난 5월 30일 부도가 났다.부도처리 이틀 만에 노조는 뒤늦게 회사와 손잡고 파산을 막기 위해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노조 집행부가 아닌 노조원 전원의 구조조정동의서 제출을 요구했다.노조가 발목을 잡지 말도록 요구한 것이다.노조는 거의 전 노조원의 각서를 받았고 이제법원의 구조조정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
세계 6위의 브라운관 생산업체 오리온전기의 부도와 법정관리 사태는 현재 국내 중소기업들이 안팎으로 처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기업인들은 입을 모은다.외국기업보다 열등한 경쟁력,강성 노조,발빠른 구조조정의 어려움과 사업악화 등이 그것이다.
구미 김경운기자 kkwoon@
■박병웅 구미商議회장
“구미지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사회 모두가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7일 경북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취임한 박병웅(朴炳雄·사진·69) 대아산업㈜ 대표이사는 취임 일성으로 역시 어려운 경제상황을 지적했다.
박 신임 회장은 “근로자와 사용자,성장과 분배,각종 이익집단의 이분법적 논리 등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경제 상황을 더욱 힘겹게 한다.”면서 “지금은 노사협력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구미의 기업상황에 대해 “대기업은 물론,중소기업도 생산시설을 중국 등지로 이전하고 있고,국내에 남아도 분사 형식으로 규모를 최소화하고 있다.”고소개했다.아울러 “이같은 급속한 변화가 자칫 국내 산업의 공동화를 가져와 일자리가 줄고 소득이 감소돼 경기위축을 부를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박회장은 “실업자는 많은 데 공장에 찾아오는 인력은 없고,돈은 넘쳐난다는 데 중소기업은 돈가뭄에 허덕이고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연간 수출 규모가 150조원이나 되는 구미공단을 첨단산업기지로 서둘러 바꾸기 위해 기업하기 좋은 입지환경을 만드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자원 빈국인 우리나라는 기업인과 생산근로자가 신바람나게 일해야 나라가 부유해진다는 것이 자신의 평생 소신이라고 말했다.
2003-07-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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