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여인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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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4-17 00:00
입력 2003-04-17 00:00
‘여인천하’는 조선 중종기의 궁중비화를 그린 월탄 박종화의 역사소설로 최근까지도 동명의 TV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왕의 ‘은총’과 후계 구도를 놓고 여인들이 벌이는 암투는 극적 흥미가 만점이다.그러나 여기에서 묘사되는 ‘여인천하’는 전근대적인 모순으로 가득찬 사회,음모와 술수,사악함이 넘쳐나는 불의의 공간이다.또한 ‘여인’은 왕이나 왕자,다시 말하면 오직 남성을 통해서만 야심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제2의 성’일 뿐이다.이런 맥락에서 봉건적 냄새가 가득한 ‘여인천하’란 호명은 당사국,또는 ‘여인’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겐 결코 달가운것이 못된다.
아직 여성 국가 수반을 가진 여러 나라들이 전근대적 자취를 갖고 있기는 하다.왕의 딸이자 후계자의 계모로서 왕권을 대리하다 마침내 왕의 지위를 꿰어 찬 이집트의 하쳅수트 여왕은 여성 권력 획득의 고전적 모델이지만 인도네시아,필리핀,스리랑카 등 아시아의 현역 여성 국가 수반들이 모두 부모의 후광을 업고 정권을 잡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핀란드,뉴질랜드 등은 여성의 참정권과 복지 등이 세계 최고수준에 오르고 있는 명실상부한 선진 국가로서 여성 국가 원수의 출현은 필연에 가깝다.벌써 두번째 여성 총리를 내고 있는 뉴질랜드는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실현했고 핀란드는 1906년 세계 최초로 여성의 공직 진출을 인정한 국가다.뉴질랜드는 19명의 장관중 여성이 8명,여성 시의원의 비율은 47.5%에 이르고 핀란드는 아직 내각 구성이 안 됐지만 기존 각료 중 40%,국회의원 중 37%가 여성이라는 평등 환경을 실현해 내고 있다.
‘여인천하’란 말엔 정상이 아닌 기이함의 시각이 담겨 있다.‘남성천하’적 시각으로 ‘여인천하’를 들여다보기보다 여성 정치할당제 등 사회의 인간화를 실현한 그들의 ‘노하우’를 연구분석 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신연숙 논설위원 yshin@
2003-04-1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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