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가 임옥상 조각전/“미군 철조망 걷어 자유의 기념비 만들고파”
수정 2002-09-24 00:00
입력 2002-09-24 00:00
25일부터 새달 7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제3전시장에서 여는 민중미술가 임옥상(52)의 조각전 ‘철기시대 이후를 생각한다’는 ‘철의 꿈’을 상상해 본 것 같다.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당시 소련은 ‘군함을 녹여 논밭 가는 보습을 만들자.’는 구호를 외쳤다.”면서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전체를 기지촌으로 만드는 주한미군의 철조망을 걷어내 자유의 기념비를 만들자는 생각을 표현했다고 말한다.철의 원래의 이용가치,평화적 가치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주한미군의 사격연습장인 매향리의 폭탄을 소재로 2000년 연개인전 ‘철의 시대·흙의 소리’의 연장선장에 있다.당시에도 매향리에서 폭탄의 파편을 주어모아 녹을 벗기고 갈고닦아 반짝거리는 조각품을 만들어 ‘USA가 새겨진 철의 폭력’에 집중해 분노를 표출했다.하지만 이번에는 폭탄 파편으로 만든 식탁과 의자,조명기구 등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철이 ‘평화와 정의,인류 해방’의 도구가 돼야 한다는 직접적인 작가의 외침을 들려준다.
날마다 이어지는 폭격 연습으로 몸 전체를 찢는 듯한 폭음에 시달리는 매향리 사람들이 폭탄 파편을 모아 고철로 팔거나,종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거나,역기로 만들어 운동을 하는 등 다소 이율배반적으로 사는 모습도 그에게 사고의 전환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직설적이다.불발탄을 남성의 거대한 성기로 차용해 남성성(男性性)의 폭력성과 파괴성을 고발한 ‘위대한 미국의 성기(The Great American Phallus) 연작이나,터미네이터같이 철골만 남은 고철 인간이 스푼과 포크·나이프로 만든 날개를 달고 비상하려는 모습의 ‘철의 꿈’연작 등을 돌아보면,통렬한 분노보다 폭력으로 비틀린 인류 역사가 스쳐지나는 듯해 서글픈 생각이 든다.
이번 전시는 세프코리아가 후원했는데,임씨는 “반미적 요소가 짙은 작품을 하면서,외국계 다국적기업의 후원을 받는다는 점이 처음에는 마음에 걸렸다.하지만 작가가 제 뜻을 펴기 위해 시대와어떻게 만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작가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작품은 따로 있다.”고 운을 뗀 뒤 “전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작업(공공 미술)을 하고 싶다.그럴 힘과 순발력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마지막으로 “상업화랑의 전속작가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속작가,세계인의 전속작가로 커갈 수 있도록 적극 활용해 달라.”고 부탁했다.(02)736-1020
문소영기자 symun@
2002-09-24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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