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산상봉/ 北 오경수씨 6남매 만남
수정 2000-08-16 00:00
입력 2000-08-16 00:00
얼마나 울었을까.경수씨가 먼저 정신을 가다듬고 “전쟁통에 동생들이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 있어서 고맙다”며 두 남동생과세 여동생의 등을 두드렸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 도착한 길수씨형제들에게는 하룻밤이 50년보다 길게 느껴졌다.
하얗게 밤을 지새며 형이 즐겨 부르던 ‘비내리는 고모령’을 연습하기도 했다.50년 만에 만난 서먹함을 없애기 위해서는 손을 잡고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봉장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이들 앞으로 경수씨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자 서먹함은 온데간데 없고 금세 혈육의 정을 확인하는 울음바다가 연출됐다.
형제들은 밤잠을 설치며 경수씨에게 보낼 편지도 한장씩 준비했다.
길수씨는 떨리는 가슴에 우황청심환까지 먹었지만 소용없었다.밤새뒤척이다 새벽 5시쯤 산책에 나서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생각에생각을 거듭했다.
“한평생 못다한 사연들을 어찌 이 한장에 다 적을 수 있겠습니까…이제 곧 형님을 모시고 부모님께 성묘갈 날이 오겠지요.금강산 구경도 물론이구요…동생 길수 올림” 동생들이 전하는 편지와 육성이 담긴 테이프,경수씨의 초등학교 졸업장,상장 등을 건네받은 경수씨의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고였다.북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호텔 지배인으로 있다는 형의 말을 들은 길수씨는 “형은 6살 때 소학(小學)을 뗄 정도로 총명하셨지요.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두부장사를 할 만큼 사랑도 깊으셨습니다”며 한걸음에 달려온 형을 고마워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2000-08-1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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