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활황 89년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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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9-04-28 00:00
입력 1999-04-28 00:00
89년 4월1일 종합주가지수가 1,007.77 포인트까지 오른 것은 일종의 거품이었다.88년 말까지는 올림픽 특수에다 ‘3저’를 바탕으로 경기호황이 지속됐다.6.29 선언에 따른 민주화 열풍이 거세 정치·사회적으로 불안했음에도 금융·건설·무역 등 이른바 ‘트로이카주’는 불안스런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89년에는 경기가 고점을 지나고 있음에도 88년 10월에 발표된 자본시장 국제화 추진계획의 여파로 주가는 계속 올랐다.증권사들은 앞다투어 지점을 전국으로 확대했고 부동산 시장이 주춤하는 사이 ‘개미군단’들은 증시로 몰렸다.지금처럼 현금이 풍부한 유동성 장세였으나 금리는 여전히 높았고 경기는 하향곡선을 그렸다.
증시로 몰린 자금은 금리인하로 투자처를 잃은 여유자금이 아니라 소팔고논팔아 일확천금을 챙기려는 투기자금들이 상당수였다.경기를 정확히 예측한 기관투자자들은 물량을 내놓았으나 폭락을 경험하지 않은 초보 투자자들은사자로만 일관했다.그러나 곧 자금유입이 끊기고 실적도 뒷받침되지 않자 증시는 1,000선을 돌파한 직후 바로 곤두박질쳤다.깡통계좌라는 말도 이때 나왔다.
반면 92년 8월5일 종합주가지수 500선이 붕괴된 뒤 95년 1월4일 1,136.7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때까지는 지금과 비슷하다.증시로 유입된 자금이 저금리를 피해 새로운 투자처를 찾으려는 여유자금이었다.금리가 연 19%에서 13%대로 당시로서는 크게 떨어졌고 주당순이익도 실적호전에 따라 단계적으로 올라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금 증시는 사상 초유의 저금리에다 뮤추얼펀드와 수익증권 등 간접투자부문의 확대로 투자수요가 안정적이다.게다가 구조조정까지 거쳐 경기에 대한기대가 크며 개인투자자들도 손해를 보면 장기 보유한다는 적극적인 자세로매수,증시활황이 이어지고 있다.
백문일기자 mip@
1999-04-2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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