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식없이 진지한 현안논의 30분/한·미정상 핫라인회담 뒷얘기
기자
수정 1993-12-09 00:00
입력 1993-12-09 00:00
김영삼대통령과 클린턴 미국대통령간의 7일 밤 전화회담은 쌀,북핵등 두나라의 첨예한 현안을 직접 다룬 격의 없는 회담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수 있다.
번거로운 의전과 절차가 생략된,그렇지만 많은 메시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국민에게 「이런 정상회담도 있구나」하는 신선함도 심어 주었을 것 같다.
이번 전화회담은 한 미간 직통전화 개설후 처음 이뤄진 실질적 회담이어서 그런지 뒷얘기들이 많은 편이다.
○통역들이 시험대화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간의 직통전화 회담은 두 정상이 본격 대화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측 박진보좌관등 두나라 통역들이 먼저 시험대화를 하면서 시작했고 이들의 대화는 밤 10시45분부터 10분동안 진행.
통역들의 사전 대화는 첫 전화회담인 만큼 전화기 성능 시험과 함께 정상간 실질대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이뤄졌다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설명.
두나라 통역들은 시험통화에서 미리 『안녕하십니까』『굿나잇』이라고 정상들이 할 인사를 대신했다고.
이 때문에 정상들은 10시55분 부터 겉치레용 인사 없이 곧바로 현안 논의에 돌입,30분 동안 회담.
대화는 김대통령이 먼저 쌀개방에 따른 우리의 어려움과 특수사정을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으며 클린턴대통령은 처음에는 『어렵다』고 했다가 김대통령이 계속 우리의 어려운 처지를 강조하자 나중에는 『검토해 보겠다』고 방향을 선회했다고 관계자들이 전언.
○“가만히 있을수 있나”
○…이번 한 미정상의 전화회담은 김대통령의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김대통령은 지난 1일 미유럽공동체(EC)간 농산물 협상이 시작되면서 우르과이라운드(UR)협상이 타결될 기미를 보이고 우리의 쌀시장 사수가 점차 어려워지자 『이 중요한 때에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며 외무부등 관련부처에 한 미정상회담을 추진토록 지시.따라서 전화회담은 김대통령의 구상으로 이미 지난 1일부터 추진된 셈.
다음날인 2일 한승주외무장관은 즉각 제임스 레이니 주한미대사를 외무부로 초치,김대통령의 전화 정상회담 의사를전달하고 미측의 의중을 타진하는등 실무 준비에 착수.
만 하루만에 회담이 가닥을 잡기 시작하자 김대통령은 3일 레이니대사를 직접 청와대로 불러 쌀시장 개방에 대한 우리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미측의 협조를 당부하면서 『클린턴대통령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심경을 공식 전달했다는 후문.이 때부터 관련부처는 본격적으로 전화회담 준비에 착수.
○“북핵조율도 큰 의미”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도 드러나듯 이번 회담의 주 의제는 쌀문제.그러나 북한이 3일 미국과의 뉴욕접촉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새 제의를 해와 핵문제가 뒤늦게 끼어들었다고.
북한의 제의는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답변인데다 내용상 실무선에서 방침을 결정하기가 몹시 어려웠다고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설명.그래서 『충분치는 않지만 검토해볼만한 필요는 있다』는 식의 엉거주춤한 태도로 일관했던 것.특히 IAEA가 3일 이사회에서 『북핵이 평화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시점』이라고 말해 제재착수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음을시사함으로써 정부관계자들은 자칫 공식 입장정리가 늦어질 때 닥칠 상황에 대해 크게 우려했던 게 사실.
전화회담이 확정되자 외무부는 김대통령에게 북핵문제의 논의 필요성을 설명한 뒤 회담에서 다룰 검토사항을 사전보고.
외무부의 당국자는 『이번 정상회담은 한 미간 UR협상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북핵문제에 대한 양국의 입장을 정리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설명.
통상 당국자도 『정상간의 논의로 미국의 입장이 우리에게 보다 더 우호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는 게 현지 보고』라고 소개.
○「최종 예상보고」 올려
○…김대통령이 쌀개방 문제를 직접 논의할 필요성을 느낀 것은 지난달 30일 UR협상에 대한 관련부처의 최종보고를 받고서일 것이라는 관측.관련부처는 이날 제네바등 현지 보고를 종합,타결이 불투명하던 미EC간 농산물협상이 진전을 이룰 것으로 전망하면서 『UR협상이 타결되고나면 쌀시장 사수는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최종 예상보고서」를 김대통령에게 올렸다는 것.
정부가 일정을 앞당겨 2일 정부 협상대책반을 현지에 파견한 것도 이같은 사태의 심각성 때문이었다고.그전 까지만 해도 프랑스와 스위스등의 반대로 미EC간 협상 전망이 불투명한데다 13개 참가국이 농산물·섬유등 일부 협정에 반발,타결을 예측키가 어려웠다고 관계자들은 설명.<양승현기자>
1993-12-09 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