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중개업소 올 50곳 문닫아/금리하락시대… 명동 새 풍속도
수정 1993-04-03 00:00
입력 1993-04-03 00:00
사채시장이 개점휴업 상태다.급전을 구하지 못해 안달하는 기업인들도 없고,사채시장을 요리해 거액의 부당이득을 챙겨온 「큰손」들도 사라져 썰렁하기만 하다.
최근 사채중개업소가 밀집한 서울의 명동에는 급전을 구하기 위해 사채중개업소의 문을 두드리는 기업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수백억원에서 천억원단위의 「검은 돈」을 최고 25%의 고금리로 굴리던 전주들도 모습을 감춘지 오래다.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급전 수요자들로 바글대던 이곳이 파리만 날리고 있다.빌리는 돈의 금리·기간·금액을 따지지 않는다는 「3불문」시대는 지나갔다.명동 사채시장이 최악의 불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2일 금융계와 사채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최근 대기업들의 자금수요가 줄어들고 은행이나 단자사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및 보증지원을 대폭 강화하자 주로 급전 조달창구 역할을 해오던 사채시장의 거래규모가 작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아예 문을 닫고휴업에 들어간 중개업소들도 속출하고 있다.서울 명동의 경우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대략 2백∼3백개로 추산되는 사채중개업소들이 난립해 있었다.모사채중개업자는 『올들어서만 이들중 약 20%에 해당하는 50여개소가 문을 닫았다.이외에도 상당수의 사채중개업소들이 간판만 내걸고 영업을 거의 않고 있다』고 말했다.J투자금융의 자금운용담당 간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3불문 시대를 맞아 엄청난 호황을 누리던 사채중개업소들이 최근 금융환경이 변하면서 급속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채시장의 금리는 최근 일부 은행권금리 수준까지 떨어지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한국은행 공개시장조작실에 따르면 초우량 대기업의 A급어음 금리는 1일 현재 연 13.2∼13.8%까지 떨어졌으며,우량중소기업의 B급어음도 연 14.4∼15.6%로 하락했다.사채시장의 이같은 금리수준은 「1·26 규제금리 인하조치」 이전의 은행 신탁대출금리와 비슷한 수준이다.특히 A급어음 금리는 지난 91년말(연 22.8%)에 비해 최고 9.6%포인트,작년말(17.8%)에 비해서도4.6%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사채시장 금리가 은행권금리에 접근하고 은행권의 자금이 풍족해짐에 따라 지금까지 단기간에 높은 불로소득을 향유해온 「검은 돈」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사채시장의 큰손들은 대부분 부동산·증권투기 등으로 거액을 모은 졸부들이다.명동 사채중개업소의 한 관계자는 『새정부 출범 이후 고위공직자에 대한 사정한파와 재산공개의 여파로 수백억원 규모를 사채시장에서 운용해 오던 대형 전주들이 몸을 사리면서 사채시장의 현금물동량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행 공개시장조작실의 송창헌과장은 사채시장 위축에 대해 『과거처럼 대형 금융사고 발생이나 정치권의 사정바람등 시장외적 요인에 따라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기 보다는 최근의 기업자금수요 감소와 금리인하등에 따른 시장 수급구조의 변화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풀이했다.<염주영기자>
1993-04-0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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