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판 ‘모지스 할머니’처럼… 여든 다섯에 늦게 피어난 그림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수정 2026-05-06 13:16
입력 2026-05-06 13:16

미국의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보다
늦은 나이인 85세 늦깎이에 그림 시작
“인생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는 말에 용기
2년 만에 제주시 델몬도뮤지엄서 첫 개인전
스승 유창훈 화백 “농부 마음처럼 그림이 따뜻”

이미지 확대
지난 2일부터 5월 31일까지 제주시 도남동 델문도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첫 개인전에서 과수원 감귤창고 그림을 설명하며 웃는 좌기춘 할머니. 제주 강동삼 기자
지난 2일부터 5월 31일까지 제주시 도남동 델문도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첫 개인전에서 과수원 감귤창고 그림을 설명하며 웃는 좌기춘 할머니. 제주 강동삼 기자


“평생 우리네 어머니들이 호미가 녹슨 적 없을 만큼 정성을 다해 농사를 지었듯, 할머니의 그림에도 그런 농부의 마음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어 따뜻해요.”

여든이 넘은 좌기춘(87) 할머니의 손에 붓을 들게 해 늦깎이 화가의 길로 인도한 유창훈(61) 화백이 할머니의 첫 개인전을 두고 지난 4일 이렇게 말했다.

지난 2일부터 5월 31일까지 제주시 도남동 델문도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첫 개인전에는 모두 74점의 작품이 걸렸다. 종달리 해변의 철새, 교래리 곶자왈, 성산 광치기 해변의 일출, 애월 한담 올레길…. 제주의 풍경이 그의 눈과 손을 거쳐 따뜻한 색으로 되살아났다. 작품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들어 있고 정직한 시선, 그리고 긴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다.

스승인 유 화백은 “일반적으로 2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기적에 가깝다”며 “어르신은 사물에 대한 이해와 관찰력이 탁월하다. 특히 물에 비친 풍경을 표현하는 능력은 타고난 재능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어 “가르친다기보다, 오히려 제가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짧은 시간에도 작품의 완성도는 놀랍다. 종달리 해변의 철새를 그린 작품에서는 수백 마리의 움직임을 다르게 표현했고, 범섬을 담은 그림에서는 파도의 결을 모두 다르게 그려냈다. 물에 비친 그림자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집념이 화면을 채운다.

이미지 확대
좌기춘 할머니가 4일 미국의 국민화가 모지스처럼 화가의 길을 권유했던 손녀가 다녔던 미시간 대학교 캠퍼스를 그린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좌기춘 할머니가 4일 미국의 국민화가 모지스처럼 화가의 길을 권유했던 손녀가 다녔던 미시간 대학교 캠퍼스를 그린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좌 할머니는 “종달리 해변의 새떼들을 그릴 땐 엎드린 놈, 앉은 놈, 뛰는 놈, 나는 놈 등 제각기 달라 애먹었다”면서 “한 마리 학을 그리기 위해 밭일을 마치고 돌아와 그림을 그리고, 다시 수정하고 또 그렸다.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수십 번 지웠다 그렸다 했다”며 기억을 떠올렸다.

제주시 화북에서 평생 밭을 일구며 농사를 짓던 그는 손에 연필과 붓이 쥐어진 건 85세 되던 2024년 6월이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2019년 우연히 동네 성당 노인대학에서 그린 ‘코스모스’ 그림을 본 손녀의 한마디가 그림을 그리는 원동력이 됐다.

“우리 할머니도 70대 후반에 그림을 시작해 100세가 넘도록 작품 활동을 이어간 미국의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처럼 됐으면 좋겠어요.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는 없어요”라는 말에 용기를 얻게 됐다.

이후 며느리와 손녀의 손에 이끌려 제주대 미술학과에서 강의하는 유 화백의 화실 문을 두드렸고 거기서 연필을 깎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우연히 갤러리에 들른 제주 출신 한중옥 화가는 “50년 넘게 그림을 그렸지만 저 나이에 저만큼의 열정으로 계속 그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감탄했다.

이미 전시작 74점 가운데 40여 점이 판매되며 호응을 얻고 있다. 좌 할머니는 “교수님이 그림이 따뜻하다고 칭찬해줬다”며 “그냥 좋아서 그린 그림인데 팔리는 거 보니 직업이 되는 것 아니냐”며 소녀처럼 웃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세줄 요약
  • 85세에 붓을 잡은 좌기춘 할머니의 첫 개인전
  • 제주 풍경 74점 전시, 따뜻한 색감과 정성 호평
  • 전시작 40여 점 판매, 관람객 반응도 뜨거움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Q.
기사를 다 읽으셨나요? AI 퀴즈로 핵심 점검!
좌기춘 할머니가 그림을 시작한 나이는?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