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안보협력 확대해야 질적 도약 시대 열려”
수정 2012-06-07 00:38
입력 2012-06-07 00:00
전 中 외교부 차관 쉬둔신 국제문제연구기금 고문
“중국이 한국과 수교를 결정할 당시 중국 내부에서 이견이 많았지만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결심으로 가능했다. 북한의 반대도 있었지만 두 나라의 필연적인 관계 발전 방향을 내다본 덩샤오핑의 결단과 의지로 관계 정상화를 앞당길 수 있었다.”한·중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21세기 한·중교류협회(회장 김한규 전 총무처 장관)와 중국외교부 인민외교학회의 공동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쉬둔신(徐敦信) 중국 국제문제연구기금 고문은 6일 두 나라가 양적 발전을 넘어 질적 도약의 시대로 나아갈 때라고 강조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북한 문제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천안함 사건 등 북한 문제에서 한·중 간 이견이 노출됐지만 전체적인 입장에선 공통점이 더 크다. 천안함 문제를 한국 측이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겠다고 했을 때 중국은 반대했지만 한국 입장을 배려해 의장 성명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2005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을 만들어낼 때처럼 한·중 두 나라의 긴밀한 전략적 협력이 다시 가동돼야 한다.”면서 “비핵화, 관계정상화, 평화 체제 수립 등의 정신으로 북한 문제와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강조했다.
●“한·중 FTA 타결도 발등의 불”
그는 한·미 군사훈련, 미 항공모함의 서해 진입 등에 대해 중국에서 이를 비판하는 격앙된 여론과 혐한 감정이 확산된 것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그렇지만 “한·미 동맹은 냉전 때 형성된 역사적 유산이며 제3자에게 영향을 주는 한 중국 정부는 이를 양자 간 해결해야 될 문제로 볼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미 동맹이 주변 국가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잘 다뤄 나가 달라는 주문이다. 서해 미 항공모함 진입에 대해서는 “공해상이라고 해서 주변 국가의 안전과 정서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중국 측의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쉬 고문은 안보 문제에 대한 공감대 확대와 함께 두 나라의 질적 도약을 위해 해결해야 할 ‘발등의 불’로 한·중 FTA의 조속한 타결을 꼽았다. 그는 “한·중 교역액은 2400억 달러를 넘었고 중국은 한국의 제1의 교역·투자 대상국이지만 중국의 대한국 투자는 6억 달러로 전체 해외투자의 1% 남짓 될 뿐이다. 동북아는 경제의 지역화, 일체화 추세에서 유럽이나 북미에 뒤처져 손해를 보고 있다. 교역과 투자 협력의 합리적인 규범을 세우고 불확실성과 통상 마찰 요소에 대비하면서 더 수준 높은 차원의 개방과 한·중 FTA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농업과 중소제조업, 중국의 자동차, 전자, 서비스업 등 각자 상대적 취약성과 민감성을 안고 있는 부분이 있지만 국가 전체의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는 주장이다.
●“민간 대화 활성화로 전략적 신뢰 부족 해소”
한·중 간 ‘전략적 신뢰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선 민간 대화를 활성화하고 대화 통로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인민외교학회와 한·중교류협회 활동처럼 형식은 민간이지만 과거 정부에서 고위직으로 활동했던 정·관계 및 경제계 인사들의 교류를 제도화한 것은 양국 이해 확대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둘러싼 갈등과 한·중 금융 통화 스와프 체결 당시 두 나라를 오가면서 막후에서 김 회장이 큰 역할을 한 것 등도 예로 들었다.
쉬 고문은 수교 당시 중국외교부 아시아담당 차관으로 한·중 비밀 수교회담을 총괄했다. “1992년 7월 노창희 한국외교차관과의 베이징 회담에서 수교와 관련된 모든 협의를 마치고 가협정에 서명했던 일들이 어제일인 듯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그 뒤 수교 협정 날짜를 잡고 한국은 타이완에, 중국은 북한에 공식 통보를 하는 등 긴박한 일들이 그해 여름 진행됐다.
그는 외교부장 첸치천(錢其琛)을 수행해 평양으로 날아가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나 한·중 수교 사실을 최종 통보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중국 측 입장이 그러하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던 김일성의 어둡고 결연했던 표정이 생생하다. 당시 우리는 김 주석이 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반응과 발언을 예상하고 이러저러한 준비를 했지만 김 주석의 대답은 짧고 간단했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같은 장쑤성 양저우 출신인 쉬 고문은 중국 외교부 아시아담당 국장과 차관, 주일 중국대사를 지낸 중국 외교부 내 대표적인 일본통이다. 중국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등으로 현재도 중국 외교 전반에 대한 조언과 관련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2012-06-0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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