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술집 ‘사직골 대머리집’ 외상장부 공개했더니
수정 2009-07-29 00:00
입력 2009-07-29 00:00
이날 공개된 외상장부는 총 3권으로 1950년대 말부터 62년까지 ‘외상 고객’들의 소속 기관·이름·날짜·외상값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서울시청·경제기획원 등 공공기관,서울신문·동양방송 등 언론사,서울대·연세대 등 학교,금융기관에 일하던 사람들이 외상을 ‘긋고’ 갔다.장부에는 300명 정도의 이름이 적혀 있다.’필운동 건달’ 등의 별칭으로 적힌 경우도 더러 있다.
장부에는 반가운 이름도 다수 눈에 띈다.연기자 박근형·백일섭·이순재·최불암·변희봉·오지명이 ‘풋기 연기’를 할 때 이 곳에서 인생을 배워갔고 성우 배한성과 MC 황인용이 삶을 배워가며 외상 장부에 이름을 올렸다.이외에 이경식·진념(전 부총리),조지훈·최일남(문인),이구열(미술평론가),장일남(작곡가),김대벽(사진작가)씨가 서글서글한 눈빛을 돈 대신 건네며 외상술을 마셨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이가 대부분이기에 손님들의 부탁 한 번이면 인심좋은 주인은 이름과 금액을 외상 장부에 적어놓기만 했다. 끝까지 돈을 갚지 않아 돈을 떼이는 경우도 다반사였지만 그래도 주인장은 싫은 내색 한번 없이 ‘외상 인심’을 베풀었다. 당연히 이곳은 광화문 일대 공무원, 문인, 기자, 방송인, 교수 등의 사랑방이자 정보교환소 역할을 했다.대머리집은 70년 넘게 대를 이어오며 광화문의 터줏대감 역할을 해오다 1978년 인수자를 찾지 못해 문을 닫았다.
외상 장부는 당시 단골이던 극작가 조성현씨가 식당 주인에게 전해받아 보관하던 것들이다.70년 세월과 낭만이 담긴 이 장부는 30일부터 9월 20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광화문 年歌(연가): 시계를 되돌리다’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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