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서 한국의 미래 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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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1-03 08:31
입력 2005-01-03 00:00
한반도에서 직선거리로 1만 7000㎞ 떨어진 곳. 남극대륙이 대서양으로 길게 꼬리를 드리워 빚어낸 사우스 셰틀랜드군도의 대표 섬 ‘킹 조지’에 대한민국 과학미래의 희망이 숨쉰다. 우리나라 남극탐사와 개발의 전진기지인 ‘세종과학기지’에도 을유년 새해의 첫 동이 텄다. 눈앞을 가리는 블리자드(폭설풍)와 영하 20도의 혹한이 살을 에지만 세종기지 대원들의 임무에 쉼이란 있을 수 없다. 어려운 경제사정과 혼란스러운 정치·사회 분위기로 어느 해보다 버겁게 시작한 2005년. 제18차 월동대의 홍성민 대장과 이상훈 대원이 1일 서울신문에 보내온 2통의 이메일 편지에서 우리는 새해의 희망과 각오를 읽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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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세계와 가장 멀리 떨어져 혹한 속에서 …
문명세계와 가장 멀리 떨어져 혹한 속에서 … 문명세계와 가장 멀리 떨어져 혹한 속에서 생활하는 남극 세종과학기지의 제18차 월동대원 16명이 기지가 자리잡은 세종곶에서 밝게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뒷줄 오른쪽에서 4번째가 홍성민 대장, 앞줄 왼쪽에서 4번째가 이상훈 대원이다.
세종과학기지 제공


홍 대장 “희망을 이야기 합시다”

고국의 반대편 남쪽 끝으로 날아온지 벌써 20여일이 지났습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건 빙벽에서 떨어져 기지 앞 바다를 떠도는 유빙(流氷)만은 아닙니다. 자원부국(富國)으로, 과학 선진국으로 거듭나는 우리의 미래가 펼쳐져 있습니다. 처음 짐을 내려놓는 순간, 거대한 설원과 빙원 앞에서 대원들의 눈가가 뜨거워졌던 것은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문명세계와 가장 멀리 떨어진 이곳은 그 자체로 거대한 ‘과학 실험장’입니다. 만년빙으로 축적된 빙하는 수십억년 지구역사를 담은 ‘타임캡슐’입니다. 대원들은 올 한해 땅과 바다에서 다양한 탐사와 연구 활동에 나서게 됩니다.

경제가 어려워 모두들 한숨 짓고 있는 상황에서 이국만리 긴 여정을 시작한 우리들입니다.1분1초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멀리서나마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 국력에 힘을 보태려고 합니다. 우리 자신을 더욱 채찍질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킹 조지섬 안에는 세종기지 말고도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 여러나라의 남극전진기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운 이곳에서 거기 사람들은 앞으로 1년간 귀한 친구가 되어줄 겁니다. 보수니 진보니, 왼쪽이니 오른쪽이니 하는 복잡한 의미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화합’이란 말을 신년벽두에 떠올려 봅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화합을 바탕으로 머지않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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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원 “문명밖 미개척 세계로의 도전”

건혁 엄마. 아빠가 펭귄나라에 간다고 좋아하던 건혁이, 펭귄처럼 뒤뚱뒤뚱 걸음마를 시작했을 건한이, 그리고 당신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난해 12월5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 지구 최남단에 위치한 ‘문명세계의 종착역’ 칠레 푼타 아레나스에 닿기까지 꼬박 사흘이 걸렸습니다. 다시 칠레 공군수송기에 몸을 싣고 3시간, 킹 조지섬에 도착한 우리를 반기는 건 초속 20m의 칼바람과 검푸른 바다의 넘실거리는 파도뿐이었소.

미래 과학한국의 기반을 다지겠다는 일념만으로 문명 밖 세계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마치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눈과 얼음, 광활한 바다는 자연 그 이상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그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진 나를 지탱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은 역시 사랑하는 가족입니다.

며칠 전 16명의 월동대원 이외에 식구가 한명 더 늘었습니다. 고 전재규 대원의 1주기를 맞아 추모흉상이 건립돼 기지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혹한의 날씨에도 사랑으로, 희생정신으로 둘러싸인 세종기지는 훈훈합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2005-01-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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