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저격사건’ 문서 공개] “아직도 고통… 고문 없었다니”
수정 2005-01-21 07:36
입력 2005-01-21 00:00
이날 한국 정부에 의해 공개된 19쪽짜리 ‘재일본 한국인 서승·서준식 형제 간첩사건’ 문서에는 서 교수 형제에 대한 당국의 수사기록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서 교수는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열흘 앞둔 4월18일 저녁 보안사 서빙고 대공분실로 연행당해 ▲서울대에 지하조직을 만들어 군사훈련 반대와 박정희 3선 반대운동을 배후조종했고 ▲김상현 의원을 통해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에게 불순한 (북한의) 자금을 전달했음을 자백하라고 강요당했다고 한다. 서 교수는 이를 인정할 수 없었지만 살아서는 도저히 고문을 이길 수 없어 감시병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난로의 석유를 온몸에 뿌리고 불을 붙여 자살을 시도했다. 심하게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아직도 분단의 생채기로 남아 있다.
이날 공개된 문서는 ‘혼다 겐기치’ 오사카시립대 명예교수 등 ‘서승 형제를 구하는 회’ 대표단 등이 고문 중단과 사면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우리 정부에 항의문을 보낸 것에 대해 수사당국이 “두 형제에게 고문 또는 학대한 사실이 없으므로 책임질 일이 없다.”는 내용을 전달했다는 내용만 담겨 있다. 따라서 박정희와 김대중이 맞붙은 1971년 4월 대선을 한 달 앞둔 점에서 발생했고 범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해 엄청난 고문으로 거짓 자백을 강요했다고 알려진 이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료였다.
서 교수는 기자가 보내준 문서를 읽고 난 뒤 “어차피 대선을 위해 써먹기로 한 사건인데 밀실 고문의 현장이 문서에 드러날 리가 있겠냐.”면서 “당시 정부가 군사독재를 위해 인권침해를 자행했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한·일 두 나라의 소장파 법학자들과 함께 학문적 교류를 벌이고 있는 서 교수는 오는 27일 학술연구 활동을 위해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현대 한국 민주화와 법정치 연구를 위한 활동이 목적이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2005-01-21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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