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등록이후 첫발-중국 고구려유적지를 가다] (하)두번째 도읍지 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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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8-26 01:34
입력 2004-08-26 00:00
‘세계유산 등록 이후 지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고구려의 북방개척의 전진기지인 나통산성과 고구려 첫 수도의 환런(桓仁)의 오녀산성에서 역사 왜곡을 확인한 우리 일행은 8월14일 지안(集安)으로 들어갔다.우리는 퉁화(通化)를 출발하고 얼마 가지 않아 지안에서 100㎞나 떨어진 곳에서 ‘세계문화유산 고구려 유적의 도시 지안’이라는 대형 광고와 마주쳤다.철기둥으로 만든 반영구적인 광고판이었다.중국이 고구려 유적에 쏟는 관심과 열기를 다시 실감했다.

지안-고구려는 중국 지방정권 선전

가장 먼저 지안박물관으로 갔다.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국내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지안박물관은 전시물의 90%가 바뀌었을 정도로 완전히 새 단장을 했다.박물관 가운데에 있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천장까지 닿는 대형 광개토태왕비 탁본이 걸려 있고 그 앞에는 1.5m쯤 되는 표지판에 박물관을 안내하는 인사말(前言)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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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 앞에 새로 세워진 일본어(왼쪽)와 한국어(오른쪽) 설명문.중국내 고구려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후 모든 유적지에는 몰려드는 관광객을 위한 일본어·한국어 설명문이 함께 등장했다.
광개토대왕비 앞에 새로 세워진 일본어(왼쪽)와 한국어(오른쪽) 설명문.중국내 고구려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후 모든 유적지에는 몰려드는 관광객을 위한 일본어·한국어 설명문이 함께 등장했다.


“고구려는 중국 동북지방의 고대문명 발전과 생산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중국 동북지방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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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수
 고구려연구회 회장
 서경대 교수
서길수
고구려연구회 회장
서경대 교수
아마 이 한마디가 중국이 지안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던지는 핵심적인 메시지일 것이다.물론 중국어를 모르는 한국인 관람객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갈 수 있다.그러나 이 문구는 한국인보다는 중국인을 목표로 한 것이다.고구려 역사를 알고 있는 조선족들은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일반 중국인들이 입구에서부터 고구려를 자기 역사로 알도록 역사 왜곡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서쪽에 있는 방부터 관람을 시작하면 바로 눈에 띄는 것이 ‘고구려 역사에 대한 중요한 기술(高句麗歷史重要記述)’이다.제목은 ‘고구려 역사’이지만 모두 고구려 건국에 관한 내용이다.한서,후한서,삼국지,태왕비,위서 같은 유명한 사서들을 인용하여 ‘고구려는 한나라가 세운 현토에서 일어났으므로 중국 역사’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말만 교묘하게 엮어 놓았다.현토군의 고구려현은 아직 추모(주몽)의 고구려가 성립되기 이전 역사인데 마치 고구려가 한(漢)나라의 한 현인 것처럼 왜곡해 모르는 사람은 고구려 전체가 중원의 한 현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했다.

동쪽 방에 들어가면 왜곡은 더 심하다.먼저 나타난 ‘고구려 조공·책봉 조견표(高句麗朝貢受封簡表)’에는 고구려가 중원의 각국에 조공을 바치고 벼슬을 받았던 14번을 표로 만들어 쉽게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고구려 역사 705년 동안 외교적 관례로,그것도 50년 만에 한번 정도 있던 행사를 가지고 마치 고구려는 항상 벼슬을 받아 행세한 지방정권처럼 왜곡해 놓았다.고구려 705년 동안 중국에서는 35개 나라가 망했으며 그 가운데 50년도 못 가고 망한 나라가 절반이 넘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다.도대체 705년이나 지속된 고구려가 35개 나라 가운데 어떤 나라의 지방정권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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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맨위)
 누각과 방탄유리로 차단된 광개토대왕비를 들여다 보는 관람객들
 
 (가운데)
 
 지안시청을 허문 자리에 새로 만든 고구려 유적공원.공원 표지판 바로 옆에 세계유산 고구려를 상품화한 대형 여행사 광고가 나란히 서 있다.
 
 (맨아래)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인 국내성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지안박물관 담벽에 걸린 관광주간 경축 현수막.세계유산 등재후 몰려드는 관광객들에게 고구려 역사가 중국역사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속셈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진 맨위)
누각과 방탄유리로 차단된 광개토대왕비를 들여다 보는 관람객들

(가운데)

지안시청을 허문 자리에 새로 만든 고구려 유적공원.공원 표지판 바로 옆에 세계유산 고구려를 상품화한 대형 여행사 광고가 나란히 서 있다.

(맨아래)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인 국내성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지안박물관 담벽에 걸린 관광주간 경축 현수막.세계유산 등재후 몰려드는 관광객들에게 고구려 역사가 중국역사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속셈이 그대로 드러난다.
또 있다.바로 ‘고구려 유민 천도 정황(高句麗流民遷度情況)’이라는 표이다.이것은 고구려가 멸망하고 대부분의 고구려인들이 중국 땅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록들을 모아놓은 것이다.그러나 그 기록과 통계들도 고구려 땅에 그대로 남아 고구려를 이은 발해의 주민이 된 사람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음에도 교묘하게 짜맞춘 것이다.

유물을 관람하면서도 끊임없이 중국 연대를 생각하도록 해 놓았다.고구려 유물을 이야기할 때는 고구려의 초기라든가 후기,또는 무슨 왕대의 것이라고 고구려 연대로 표기해야 하는데,모두 한-왕망-후한-위-진-제-양-진-수-당 식으로 중국의 왕조로 설명하고 있어 이곳에 관람하는 중국인은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박물관 밖-관광을 통한 역사왜곡

무거운 마음으로 박물관을 나오니 담벼락에 붙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 지린성 지안 고구려 관광주간의 성대한 개최를 열렬히 경축한다(熱烈慶祝中國吉林·集安高句麗旅游節 隆重召開)’

왜 박물관에 ‘세계문화유산 등재 축하’ 현수막이 아닌 관광축제 개최 축하 문구가 걸려 있는 것인가? 바로 이 현수막이 역사왜곡을 위해 진행되는 과정을 분명히 보여준다.첫째 세계유산 등록을 계기로 하여 관광산업을 극대화하여 수입을 올리고,둘째 현지를 찾은 관광객에게 고구려 역사가 중국의 역사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의 축하행사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지린성 정부 부비서장을 주임으로 하는 ‘중국 지린·지안 고구려문화관광주간(中國吉林·集安高句麗文化旅游節)’은 지린성,퉁화시,지안시가 모두 참여하여 정부에서 지원하는 260만 위안(약 4억원)으로 여러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첫 행사가 바로 ‘지안 중국 우수 관광도시 명명식(集安中國優秀旅游城市命名儀式)’이다.지난달 20일 지안시에서 열린 명명식에서는 전국의 유명 관광 도시에서 초청한 인사를 비롯하여 3만 명이 모인 가운데 시정부 앞에서 국가 관광국이 지안시를 중국우수관광도시로 선포했다고 한다.

7월9일 관광이 시작된 뒤 20일 만에 한국에서 학생,교사 등 5000명이 다녀갔으며,올해는 적어도 1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관광회사 사장의 즐거운 비명을 들으며 마음이 착잡했다.중국 관광객들도 예전에는 주변 도시에서만 왔는데 지금은 남방에서도 많이 온다고 한다.

“지금 일본 관광객이 1000명이나 신청을 해왔는데,일본사람들이 왜 고구려 유적을 보러 오는 겁니까?”

‘준비된 역사왜곡’으로 돈을 벌면서 철저하게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현장에서 필자는 잠시 대답을 잃었다.이제 우리 모두가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2004-08-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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