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데이터센터 규제 유감
수정 2026-11-06 00:55
입력 2026-11-06 00:55
전자파, 소음 유발 데이터센터
지역 이기주의에 막혀 고사 위기
국가 미래 위한 행정 대전환 시급
최근 정부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강국을 외치며 디지털 대전환의 선두에 서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구호 뒤에 숨겨진 대한민국의 디지털 인프라 현실은 참담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라 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가 지역 이기주의와 표심을 의식한 지자체의 행정 규제에 가로막혀 고사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최근 서울의 자치구를 비롯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데이터센터 건립을 저지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규제 강화 조례를 쏟아내고 있다. 서울의 한 자치구는 주거지역에서 200m 이내에는 데이터센터를 짓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조례를 만들었다. 이뿐만 아니다. 서울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제2·3종 일반주거지역까지 데이터센터 건립을 제한하는 조례 개정이 추진되는가 하면, 자치구 건축위원회의 별도 심의 대상에 포함해 인허가 문턱을 대폭 높이고 있다. 바야흐로 전국이 데이터센터를 가로막는 행정의 늪에 빠진 형국이다.
이러한 행정 규제의 밑바탕에는 오직 눈앞의 표심만을 바라보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데이터센터는 전자파 우려 등의 이유로 주거지 인근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민원이 선거철과 맞물릴 때 발생한다. 지난 지방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지자체장들이 들어서면서 기존에 추진되던 데이터센터 인허가 절차는 약속이나 한 듯 대다수 멈춰 섰다. 표를 의식해 국가의 미래가 걸린 인프라 사업을 서슴없이 좌절시키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센터가 없이는 인공지능(AI) 혁명도, 데이터 경제도 한 걸음마저 내딛을 수 없다. 데이터센터는 미래산업의 원유인 ‘데이터’를 보관하고 정제하며, AI 알고리즘을 구동하는 핵심 심장부다. 특히 데이터의 송수신 지연 시간을 최소화하고 고급 IT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서울 등 수도권 중심부의 도심형 데이터센터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서울 내에서 데이터센터를 지을 수 있는 부지는 사실상 거의 없다. 그나마 대안으로 꼽히는 가산디지털단지, 문래동, 성수동 등의 준공업지역마저 지자체의 규제 칼날과 정치적 표심에 막혀 첫 삽조차 뜨지 못하는 현실은 국가적인 낭비이자 손실이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정부의 대응이다. 정부는 AI 혁명과 신산업 육성을 내세우면서 가장 기초적인 토대인 데이터센터 인허가 갈등과 규제 에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의 조례를 통한 규제 강화가 국가 전반의 디지털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음에도, 부처 간의 칸막이 행정과 책임 회피로 인해 중재를 위한 컨트롤타워는 작동하지 않는다. 원천 기술과 인프라가 결합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4차 산업혁명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특구 지정만 연발하는 정부의 행태는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격’이다.
주민들의 주거 환경 권리도 물론 존중받아야 한다. 소음이나 전자파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면 이를 해소하는 것이 먼저다. 그러나 해결책이 무조건적인 ‘금지와 규제’여서는 안 된다. 전자파와 소음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환경 영향 평가 기준을 정립하고 도심형 엣지 데이터센터나 지하화 방안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글로벌 테크 기업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초거대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며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든 규제의 쇠사슬에 묶여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글로벌 경쟁력의 격차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벌어질 것이다. 지자체의 근시안적인 규제 행정과 정부의 방관이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은 AI 혁명의 주역이 아닌 글로벌 IT 기업들의 디지털 식민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눈앞의 표심보다 국가의 미래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행정의 대전환과 지자체의 중재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유창수 전 서울시 부시장
2026-11-0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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