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국가대표 꿈, 꼭 보고 싶어요”… 절망의 간암 말기 극복한 70대의 기적
이병문 기자
수정 2026-11-04 11:45
입력 2026-11-04 11:45
서울성모병원 다학제 협진팀, 맞춤형 ‘간동맥주입항암치료(HAIC)’로 대반전 이뤄
간암 수치 56,000에서 정상범위 3.1로…기족 사랑과 첨단 의술이 만든 감동 서사
평생 술 한 잔 입에 대지 않고 충북 청주에서 목축업을 하며 당당하고 건강하게 삶을 일궈온 70대 가장. 그에게 찾아온 갑작스러운 복통과 복부 팽만은 단순한 일상의 균열이 아니었다. 상급종합병원의 문을 두드렸을 때 마주한 진단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행성 간암 말기’였다.
올해 2월 조 모(77) 씨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을 찾았을 때의 상태는 절망에 가까웠다. 암세포는 이미 오른쪽 간의 대부분을 집어삼킨 것도 모자라 왼쪽 간까지 집요하게 뿌리를 내렸고, 간으로 들어가는 양측 문맥 혈관까지 광범위하게 침범해 있었다. 복수가 차오르고 간 기능마저 현저히 떨어진 상태. 최근 간암 치료의 대세로 자리 잡은 면역 및 표적 항암치료조차 적용하기 힘들 만큼 종양의 범위가 넓고 장기 기능 저하가 심각했다. 치료 방침조차 선뜻 정하기 어려운 생명의 기로였다.
그러나 절망의 낭떠러지 끝에서 의료진과 환자, 그리고 가족은 손을 맞잡았다. 서울성모병원 간암센터장 장정원 교수(소화기내과)를 중심으로 소화기내과, 간담췌외과, 인터벤션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등 다학제 협진팀이 머리를 맞댔다.
선택은 ‘간동맥주입항암치료(HAIC, Hepatic Arterial Infusion Chemotherapy)’. 피부 아래 항암제 주입 포트를 심고 카테터를 간동맥에 직접 연결해 암세포가 집결한 간에만 고농도 항암제를 집중 투여하는 방식이다. 전신 부작용을 줄이면서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지만, 환자의 입원이 필수적이고 수많은 의료 인력과 장비가 투입되어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고난도 치료법이다. 편의성이 높은 외래용 경구 항암제가 늘어난 요즘, 흔히 선택되지 않는 길이었지만 서울성모병원 다학제 팀은 오직 환자의 생명을 되살릴 유일한 대안으로 이 정공법을 택했다.
아들의 간절함과 자책 섞인 효심도 투병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진료와 간병을 전담해 온 둘째 아들은 “술 한 잔 드시지 않던 아버지가 갑자기 말기 암 진단을 받으셨을 때, 내가 속을 썩여 큰 병이 생긴 것은 아닌가 자책하며 숱한 밤을 눈물로 지샜다”고 회상했다.
희망과 사랑으로 버텨낸 항암 치료의 과정 속에서 작지만 눈부신 기적들이 피어났다. 조 씨는 항암 입원 치료 중에도 시간을 내어 손녀의 유도 경기장을 직접 찾았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손녀를 응원하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눈빛은 현장을 감싸 안았고, 할아버지의 응원에 힘입은 손녀 조서연 양은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당당히 1위에 오르며 할아버지에게 생애 가장 감격스러운 기쁨을 선물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23일, 5차 항암치료 후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찾은 병원에서 또 하나의 기적이 확인됐다. 첫 진단 당시 무려 5만6,000까지 치솟았던 간암 수치(알파피토프로테인, AFP)가 정상 범위인 3.1로 현저히 떨어진 것이다.
수치상의 변화뿐만이 아니었다. 환자를 괴롭히던 복수와 부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황달 증상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간의 단백질 합성 능력과 전신 영양 상태를 나타내는 알부민 수치 역시 2.7에서 3.5로 크게 상승하며 전반적인 임상 상태가 놀라울 정도로 호전됐다.
장정원 교수는 “처음 내원하셨을 때는 기대여명을 논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환자의 상태가 위중해 걱정이 컸다”며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의료진을 믿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 준 환자와 가족 덕분에 의사로서 깊은 보람을 느낀다”고 감회를 밝혔다.
올해로 간클리닉 개설 30주년을 맞이한 서울성모병원 간암센터. 수많은 임상 경험과 다학제 협진 시스템이 구축한 정밀한 의술 위에 환자의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의료진의 집념, 그리고 할아버지의 쾌유를 바라는 가족의 간절한 사랑이 더해져 한 사람의 소중한 일상이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아버지에게 다시 효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들의 눈시울 젖은 고백처럼, 절망의 문턱을 넘어선 조 씨의 발걸음은 이제 손녀의 더 큰 꿈을 향한 여정을 함께 비추고 있다.
이병문 의학전문기자
세줄 요약
- 진행성 간암 말기 진단과 치료 난관
- 다학제 협진 통한 간동맥주입항암치료
- 손녀 꿈과 가족 응원 속 기적적 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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