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박물관장의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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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6-11-04 00:57
입력 2026-11-04 00:11
최근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사퇴와 관련해 박물관장의 윤리와 의무를 살펴보았다. 2023년 8월 영국박물관 관장 하트비히 피셔가 박물관 소장품의 대규모 분실, 도난 의혹으로 사임했다. 박물관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보석류 등 다수의 소장품이 사라지거나 훼손된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고, 이로 인해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문제는 도난 자체에 그치지 않았다. 박물관 측이 여러 해 전부터 소장품 관리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피셔는 박물관의 부실 관리 책임이 궁극적으로 관장인 자신에게 있다고 인정했다. 사임 의사를 밝혔고 이사회는 수용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사회 의장이 관장의 업무 성실성과 박물관에 대한 헌신을 높이 사며 명예롭게 퇴진했다고 밝힌 대목이다. 실제 이 사건이 관장의 부정행위가 발각되어 물러난 사례와는 다르지만 관장의 무능, 무지, 무관심은 심판받아야 한다. 개인의 무능은 죄가 아니나 공적 책임을 진 이의 무능은 죄가 되는 법이다.

2022년에는 슬로베니아 국립박물관 관장이 위작 논란에 휘말려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다. 논란은 피카소, 마티스, 뭉크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으로 소개된 작품들의 진위가 의심받으면서 불거졌다. 이 작품들은 크로아티아의 전직 정치인 일가가 소장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진품이라면 막대한 가치가 있는 컬렉션이었다. 그러나 전시 개막을 앞두고 미술 전문가들이 작품의 진위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경찰 수사도 시작됐다.

관장에게 제기된 비판은 작품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국립박물관 전시에 포함했다는 것이다. 작품의 진위와 출처를 확인하는 일은 미술관의 전문성과 신뢰를 떠받치는 기본이다. 특히 국립기관이 전시를 통해 작품의 권위를 사실상 보증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엄격할 필요가 있다. 이 사례가 보여 주는 핵심은 위작 판정 여부와 별개로, 공공기관의 수장이 전문적 검증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의혹만으로도 기관 전체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두 관장의 사례는 서로 다른 종류의 책임을 보여 준다. 영국박물관 관장은 소장품 관리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고, 슬로베니아 국립박물관 관장은 진위 검증이 미흡했다는 비판 속에서 물러났다. 한쪽은 관리 체계의 실패, 다른 한쪽은 전문적 판단과 검증의 문제다.

공공기관의 수장에게 요구되는 윤리는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이해충돌을 피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미술관장과 박물관장은 작품을 소유한 개인이 아니라, 시민의 신뢰를 위임받아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관장의 명성이나 학문적 업적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공적 책임에 우선할 수는 없다. 박물관의 명성은 문제가 생겼을 때 신속하고 투명하게 대응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에서 지켜진다. 박물관의 품격은 전시장의 작품뿐 아니라 그 작품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윤리의식에서 먼저 드러난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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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미술사학자
이미경 미술사학자
2026-11-0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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