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의 긴장 품고 피어난 예술의 울림

윤수경 기자
수정 2026-11-04 00:23
입력 2026-11-04 00:23
‘DMZ 오픈전시: 스테이징’
DMZ 배경 특별전, 29일까지 전시분단의 상흔·평화 상징 등 담아내
국내외 작가 14명 작품 26점 선봬
윤수경 기자
비무장지대(DMZ)는 이름과 달리 무장한 군인에게만 허락된 공간이다. 분단의 모순과 역설, 상흔 속에서도 예술은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상흔이 깃든 공간에서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관람객 스스로 그 답을 찾아가는 특별한 전시가 막을 올렸다.
경기도와 파주시가 주최하는 ‘DMZ 오픈 전시: 스테이징’은 전시는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내 캠프그리브스 일대와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를 역동적인 예술의 무대로 활용한다.
전시명인 ‘스테이징’은 프랑스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개념에서 빌려왔다. 흔히 ‘무대 연출’로 번역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어떤 존재와 사실이 특정한 조건과 관계망 속에서 인식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DMZ를 단순한 전시 배경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사물과 환경, 역사와 현재가 서로 관계를 맺는 공간으로 바라보자는 취지가 담겼다.
2012년부터 DMZ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이 기획을 맡았으며, 국내외 작가 14명의 회화·사진·영상·설치 작품 등 26점을 두 공간에서 선보인다.
경기도 제공
과거 미군 기지였던 캠프그리브스에 설치된 안규철의 신작 ‘아홉 개의 의자’는 DMZ를 사이에 두고 결함이 있는 상태로 살아가는 존재들을 보여준다. 동그랗게 모여 있는 아홉 개의 의자는 어딘가 하나씩 이상하다. 다리가 없거나 좌판의 일부가 잘려 있다. 어떤 의자는 등받이 일부 사라져 버렸다. 작가는 온전한 여덟 개의 의자의 일부를 떼어 내어 아홉 번째 의자를 만들었다.
누더기처럼 기운 아홉 번째 의자는 모든 것을 다 갖춘 듯 보이지만, 이마저도 온전한 의자가 되지는 못했다. 그는 “DMZ는 부재와 긴장이 중력처럼 작용하는 공간”이라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버티는 의자들을 통해 정전 상태의 보이지 않는 긴장을 몸소 느낄 수 있다”고 소개했다.
경기도 제공
멕시코 출신의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는 자국에서 한국 DMZ까지 오는 여정에서 수집한 신문, 리플릿, 엽서, 티켓 등을 작품에 활용했다. 수집한 종이의 한쪽 면을 UN을 상징하는 푸른색 물감으로 덮은 뒤, 글자와 이미지가 인쇄된 면이 벽을 향하도록 뒤집어 핀으로 고정했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종이들이 배치된 가운데, 관람객은 종이를 들어 올려 물감에 가려진 뒷면을 확인할 수 있다. DMZ로의 향하는 궤적을 구성하는 여러 정보 중 무엇을 드러내고 감출지가 관객 손에 맡겨지는 작품이다.
북녘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지금은 남녘에서 활동하는 작가 선무는 북한의 선전화 양식과 남한에서 다시 익힌 회화 기법이 교차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작품 ‘봄놀이’는 남북의 청소년들이 하나의 풍경 속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담았다. ‘우리 서로 만나서 신나게 놀아보자!’라고 적힌 대형 깃발, 홍조를 띤 건강한 인물의 모습 등에서 선전화의 전형적 표현 방식이 엿보인다.
임진각 평화누리에 설치된 이요나의 작품 ‘대기실’은 스테인리스 파이프로 만든 닫힌 구조 안에 신호등, 가로등, 버스 손잡이, 도로 반사경 등을 설치했다. 신호도 있고 버스도 있지만 남과 북으로 갈라져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현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이예은은 접경 마을 통일촌 백연리 주민들의 물건을 쌓아 올린 사진들을 선보인다. 밭일할 때 쓰이는 의자, 주전자, 바가지 등은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삶과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경기도 제공
뉴질랜드 작가 자닌 랜더슨의 영상 작품 ‘비무장화하는 이끼’는 철원 민통선 안 군사 시설을 덮은 이끼의 시점으로 전쟁 이후의 생명과 시간을 그린다. 인간이 그어놓은 인위적 경계를 조용히 지워나가는 자연의 생명력이 깊은 울림을 전한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이어진다.
윤수경 기자
세줄 요약
- DMZ 배경 특별전 ‘스테이징’ 29일까지 전시
- 캠프그리브스·임진각서 14명 26점 선봄
- 분단 상흔과 평화 의미를 예술로 질문
2026-11-0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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