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무실 일상, 거대한 비밀 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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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수정 2026-11-04 00:22
입력 2026-11-04 00:22

발저의 단편집 ‘사무실에서’
지루함 뒤집는 비범함 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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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원은 우리 삶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존재인데도 지금까지 한 번도 문헌상으로 논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 손에 펜과 계산표를 쥐고 있는 이 젊고 수줍음 많은 사무원들은 시인 양반들의 소재로 쓰이기에는 어쩌면 너무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그리 창백하지도 않았으며, 전혀 흥미롭지가 않다.”(로베르트 발저, ‘사무원’ 중에서)

사무실로 출근하고, 사무실에서 퇴근한다. 현대인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지루한 일상이다. 그래서일까. 사무실의 미미한 일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위대한 작가는 평범한 것에 가려진 비범한 것을 감지한다. 일상을 뒤집어 보겠다고 마음먹을 때, 사무실의 의미는 달라진다. 거대한 비밀을 품은 이야기의 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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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발저.  위키피디아 제공
로베르트 발저.
위키피디아 제공


로베르트 발저(1878~1956)는 일찍이 사무실이라는 공간의 문학성을 알아챈 작가였다. 작가로 글을 쓰는 동안 ‘작은 것을 향한 추구’를 놓지 않았던 발저의 단편집 ‘사무실에서’(미간행본)가 최근 한국어로 번역됐다. 사소하고 미미한 존재인 사무원을 주제로 한 2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일찍 일어나 8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 모든 사람이 그것의 소리 없는 가혹함을 알고 있다. 8시를 알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그렇다, 바로 이 시간이야말로 사람들을 밀어붙이고 강제하는 시간이다.”(‘8시’ 중에서)

사무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사무원을 ‘시간에 종속된 존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무원을 지루한 일상에서 해방하는 방법도 하나다. 바로 시간을 ‘낯설게’ 보는 것이다. 시간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발저의 시선에는 사소한 것을 쓸모없는 걸로 치부하는 근대적 욕망을 향한 반기가 담겨 있다.



발저가 사무원에 주목한 것은 그의 성장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발저는 14살 때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은행에서 견습 사무원으로 일했다. 이후에도 운송회사, 공장, 보험회사 등을 전전했고, 그 경험은 그의 문학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발저가 살았던 시대에 사무원은 귀족도, 프롤레타리아도 아닌 신종 계급이었다. 그러나 그 존재의 미미함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하찮은가. 그래서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경진 기자
세줄 요약
  • 사무실의 평범함 속 비밀을 읽어낸 발저의 시선
  • 사무원을 주제로 한 단편집 ‘사무실에서’ 번역
  • 시간에 종속된 일상과 근대적 효율성에 대한 반기
2026-11-0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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