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도 걷기 힘들었다고 했다. 오랜 투병으로 몸이 약해진 채 2016년 처음 ‘걷기’를 시작한 한 주민의 이야기다. 사람들과 꾸준히 걸으며 체력을 되찾은 그는 2018년 중랑구 걷기 클럽이 공식 출범하자 리더를 맡았다. 지금은 한 시간 반을 걷고도 하루 서너 개 일정을 거뜬히 소화한다. 그는 혼자였다면 이어 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걷기는 몸만 살리지 않는다. 아내와 사별한 뒤 걷기 클럽에 나온 한 주민은 함께 걸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경증 치매가 있는 남편과 함께 나오던 부부도 있었다. 아내가 일을 시작하자 남편은 “회원들이 반기지 않는 것 같다”며 혼자 나오기를 망설였지만 회원들이 안부를 묻고 환영해 주자 금방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구에 있는 6개 걷기 클럽에 200여명이 참여하기까지 함께 손잡고 걸어 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걷기는 누구나 할 수 있고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지 않다.
나에게는 매주 수요일 아침 거리 청소를 하며 동네를 걷는 시간이 무척 소중하다. 차로 지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걸음의 속도에서는 보인다. 갑자기 끊기는 보도, 유모차가 넘기 힘든 턱, 쉴 곳 없는 오르막, 그리고 골목에서 마주치는 이웃의 안부다. 같은 이유로 구 전체의 둘레를 걷기도 했다. 책상 위 노선도로는 알 수 없는 현장이 길 위에 있었다. 보행로는 도면 위의 선을 넘어 구민의 하루가 지나가는 자리다. 평면이 아닌 입체를 바라보아야 좀더 걷기 좋은 길이 된다는 것을 그때 걸으며 다시 깨달았다.
그동안 도시 정책은 오랫동안 얼마나 빨리 이동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빠른 이동은 분명 도시의 경쟁력이다. 그러나 사람의 하루는 출퇴근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아이는 걸어서 학교에 가고, 어르신은 걸어서 시장과 병원, 경로당을 오간다. 머무는 시간의 질이 삶의 만족을 좌우하는 순간이 훨씬 많다. 초고령사회에 들어서면서 보행 환경은 어르신을 위한 사회 복지이자 돌봄이 됐다. 집 앞을 편히 걸을 수 있다면 이웃과 함께 정든 동네에서 더 오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길은 차가 없어도 돈을 내지 않아도 누구나 쓸 수 있는 가장 평등한 공공 공간이다. 그래서 안전하고 끊기지 않아야 하며, 가파른 곳은 완만해야 하고, 쉬어 갈 그늘과 의자가 있어야 한다. 휠체어를 탄 사람과 어르신, 반려견과 산책하는 이웃이 함께 걸을 수 있을 때 모두의 길이 된다.
봉화산과 용마산에 11.2㎞의 무장애 보행로를 만든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이제는 구 전체를 잇는 21㎞의 ‘중랑동행길’을 조성하려 한다. 걷다 쉬며 음악과 전시 작품을 만나는 길, 전통시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길, 여러 세대가 망우역사문화공원을 함께 걸으며 근현대사를 배우는 길, 중랑천 장미 향 속에서 계절을 느끼는 길이다. 목적지로 가는 통로를 넘어 걷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 되도록 그 위에 관계와 이야기를 더하려 한다.
2025년 중랑구민의 걷기실천율은 77.7%였다. 반가운 숫자지만 더 눈여겨볼 것은 숫자 너머의 일상이다. 길이 불편하거나 함께할 사람이 없어 망설이는 이웃이 집 밖으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게 하는 것이 공동체의 역할이다. 걷기 좋은 길을 만드는 일은 건강하게 살아갈 기회, 이웃을 만날 기회, 나이 들어서도 내 동네에서 삶을 이어 갈 기회를 넓힌다. 집 앞 골목에서 산과 하천까지 길이 이어질 때 동네는 더 건강하고 따뜻해진다. 걷기 좋은 중랑구가 오래도록 살기 좋은 도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