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on] 부끄러움은 남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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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민 기자
수정 2026-11-02 00:04
입력 2026-11-01 22:27
기자 초년생 시절 가장 무서운 벌은 ‘아무것도 하지 마라’였다. 기사를 잘못 쓰거나 취재 중 실수하면 일을 맡기지 않았다. 동료들이 바쁘게 기사를 쓰는 모습을 지켜만 볼 때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오탈자가 난 기사를 쉽게 고쳐주지 않는 것도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방법이었다. ‘사람을 가르치려면 반드시 부끄러움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부끄러움이 없으면 못할 짓이 없다’는 옛말대로 책임을 감당할 각오를 먼저 배웠다.

이제는 부끄러움을 ‘잊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변명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 익숙해졌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당당하고, 책임을 다하려는 사람만 고개를 숙인다. 부끄러움을 몰라야 못할 일이 없는 시절이다.

종합특검은 법정에서 잇따라 공소장 문제를 지적받고 있다. ‘재판부를 무시한 듯하다’, ‘공소사실이 불분명하다’, ‘공소사실 네 글자만 적으면 어떡하냐’ 등 질책도 매섭다. 한 재판부에서만 문제 삼았다면 판사의 예단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재판마다 지적이 이어진다면 부끄러워할 일이다. 그럼에도 정작 수사를 지휘했던 특검보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공소유지 변호사들이 곤욕을 치르는 모습만 지켜보고 있다. 공소유지는 내 일이 아니라는 듯하다. 기록만 넘겨받은 변호사들이야 억울할 법도 하겠지만, 애당초 남의 수사 기록으로 공소유지를 하는 일이 녹록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책임의 무게보다 보수의 달콤함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올해 국정감사장에서도 부끄러움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문재인 전 대통령 사건에 대해 ‘뼈를 발라내는 수사’라고 비판하며 재판 및 공소유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언급은 삼가야 한다는 원칙을 저버렸다. 수장의 공개 저격에 해당 사건을 수사한 검사와 공소유지를 맡은 검사는 보호 대신 비판의 화살까지 감당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그토록 수사에 문제가 있다면 공소 취소를 지휘하면 될 일이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부끄러움은 국감장 뒤편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몫이었다.

윗물이 맑지 않은데 검사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78년 만에 검찰청이 사라지고 수사와 기소가 분리됐지만, 피해자들은 증거를 제출하러 사방팔방으로 헤맨다. 중대범죄수사청은 조직도, 인력도,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쫓기듯 문부터 열었다. 예견된 혼란이 현실로 눈앞에 드러났지만 법을 만든 이들은 조용하다. 책임은커녕 그 흔한 사과조차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부끄러움을 잊은 모양이다.

결국 부끄러움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바뀐 형사소송법에 적응하느라 사건 기록과 씨름하고, 공소시효와 구속기간 만료 직전의 사건을 처리하느라 밤늦도록 일하는 이들이다. 법이 허용한 좁은 틈에서 피해자 구제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언제까지 개인의 책임감과 양심으로 제도의 빈틈을 메울 수 있을까. 부끄러움을 잊은 사람이 늘어날수록 국민이 치러야 할 대가도 커질 뿐이다.



하종민 편집국 사회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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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민 편집국 사회1부 기자
하종민 편집국 사회1부 기자
2026-11-0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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