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시대로 옮긴 ‘민중의 적’… 더 빠르고 독해진 ‘손가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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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경 기자
최여경 기자
수정 2026-10-27 00:22
입력 2026-10-26 23:49

서울시극단 연극 ‘에너미’

140여년 전 헨리크 입센 명작 각색
댓글로 둘러싼 무대 ‘공포감’ 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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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크 입센의 ‘민중의 적’을 각색한 연극 ‘에너미’는 한 사람을 적으로 몰아가는 작은 마을의 모습을 소셜미디어가 여론을 주도하는 현대 사회로 옮겼다. 서울시극단은 댓글에 둘러싸인 사회를 LED 패널로 구현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헨리크 입센의 ‘민중의 적’을 각색한 연극 ‘에너미’는 한 사람을 적으로 몰아가는 작은 마을의 모습을 소셜미디어가 여론을 주도하는 현대 사회로 옮겼다. 서울시극단은 댓글에 둘러싸인 사회를 LED 패널로 구현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노르웨이 작은 온천도시 집회장에 시민들이 모여있다. 그들은 온천수가 오염됐다고 알린 의사 토마스 스토크만을 ‘민중의 적’으로 지목한다. 시간과 돈을 들여 문제를 해결하느니 한 사람을 적으로 규정해 회피하는 쉬운 길을 택했다. 헨리크 입센(1828~1906)이 1882년 작품에서 창조했던 그 도시의 모습은 140년 뒤 어떻게 달라졌을까. 집회장은 온라인으로, 댓글은 의견으로, 거수는 ‘좋아요’와 조회수로 옮겨갔다. “다수는 결코 옳지 않다”는 스토크만의 외침이 다른 무게로 읽히는 시대다.

서울시극단이 ‘민중의 적’을 소셜미디어(SNS) 시대로 옮긴 연극 ‘에너미’를 11월 1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 선보인다. 스코틀랜드 극작가 키어런 헐리의 각색본을 강훈구 작가가 번역·윤색했고, 이준우 서울시극단장이 연출했다. 원작의 스토크만은 활동가 출신 공중보건의 커스틴(문소리·이봉련)으로, 시장인 형 페테르는 언니 보니(황영희)로 바뀌었다. 언론 역할을 한 인쇄업자 아슬락센은 유튜버 앨리(이강욱)가 선다. 워터파크 리조트 ‘빅 스플래쉬’를 배경으로 삼았다.

이 단장은 “입센이 던진 질문은 조금도 낡지 않았고 오히려 더 날카로워졌다”면서 “예전엔 한 사람이 ‘민중의 적’이 되기까지 신문이 인쇄되고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게시물 하나와 하루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극은 개장일 아침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하루의 이야기를 15개 장에 담았다.

작품 주제는 지난봄 올린 연극 ‘빅 마더’와도 맞닿아 있다. 당초 예고한 ‘아파트’ 대신 이 작품을 고른 데 대해 그는 “작업할수록 연결고리가 많았다”고 했다. 이어 “‘빅 마더’에서 알고리즘의 문제를 봤다면 이번엔 SNS에 가볍게 던진 말의 무게를 정면으로 겪는 한 사람의 경험을 들여다본다”고 차이를 짚었다.

무대는 관객을 댓글로 둘러싸도록 구성했다. 가로세로 50㎝ 크기 패널을 162장 활용해 5개 화면을 만들었다. 좌우와 중앙 등 사방에서 배우를 에워싼 구도는 말에 포위되는 느낌이다. 이 단장은 “‘빅 마더’보다 스크린 수가 확연히 늘어났다”면서 “유튜버의 라이브 중계와 채팅창, 댓글과 인물의 소통까지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강 작가는 이를 ‘공포감’으로 설명했다.

커스틴 역의 문소리는 “많이 각색된 듯해도 원전의 틀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 클래식에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같은 역에 캐스팅된 이봉련은 “원작은 진실과 은폐가 분명한데 이 작품은 연습할수록 각자 믿는 입장이 곧 진실이 된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28년 전 ‘민중의 적’에서 빌링 기자를 연기했던 강신구는 이번엔 폐기물 처리장을 가진 데릭이 됐다. 그는 “이 작품이 오히려 오늘에 더 어울린다”고 돌아봤다.



이봉련은 “공연을 보고 나가면 곧바로 (광화문) 광장에 서게 된다”면서 “극장에서 던진 질문이 관객에게 계속 유효하리라 믿는다”고 기대했다. 강 작가는 “누가 민중의 적인지 생각은 저마다 달라도, 다 같이 모여 이 이야기를 본다는 것 자체가 함께 결정해야 한다는 전제”라고 강조했다.

최여경 선임기자
세줄 요약
  • 입센 ‘민중의 적’ SNS 시대 각색 공연
  • 댓글·좋아요가 만드는 집단적 손가락질
  • 워터파크 배경, 사방 스크린으로 포위감
2026-10-2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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