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첫 부자(父子) 총리’ 후쿠다 야스오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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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명희진 기자
수정 2026-10-26 14:13
입력 2026-10-26 14:06
세줄 요약
  • 일본 첫 부자 총리 후쿠다 야스오 별세
  • 대중 온건파로 중국·한중일 협력 중시
  • 재임 1년, 네지레 국회 속 2008년 퇴진
중일 관계 개선에 힘쓴 온건파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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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영접나온 후쿠다 야스오(오른쪽) 일본 총리와 도쿄 일본총리관저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신문DB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영접나온 후쿠다 야스오(오른쪽) 일본 총리와 도쿄 일본총리관저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신문DB


일본 최초의 ‘부자(父子) 총리’인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가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90세. 대표적인 대중 온건파로 꼽히는 후쿠다 전 총리는 재임 시절 중국과의 관계 안정에 힘썼으며, 퇴임 후에도 한중일 협력과 동아시아 외교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후쿠다 전 총리는 지난 22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고인은 1976~1978년 총리를 지낸 후쿠다 다케오의 장남이다. 2007년 9월 일본 최초의 부자 총리로 취임해 이듬해 9월까지 1년간 재임했다.

1936년 군마현 출신인 고인은 와세다대를 졸업한 뒤 석유회사에서 17년간 근무했다. 아버지의 비서와 총리 비서관을 거쳐 1990년 53세에 중의원에 처음 당선됐으며 이후 7선 의원을 지냈다. 2000년 모리 요시로 내각에서 관방장관으로 처음 입각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도 같은 직책을 맡았다.

총리 재임 당시에는 중의원과 참의원의 다수당이 다른 ‘네지레 국회’로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야당 민주당과의 대연립을 추진했지만 무산됐고 내각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자 2008년 9월 퇴진했다. 재임 중에는 소비자청 설치를 결정하고 공문서 관리 강화를 위한 법제 정비를 추진했다.

외교 분야에서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주력했다. 2008년 5월 방일한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전략적 호혜관계’ 발전을 확인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정계 은퇴 후인 2014년에도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는 등 아베 신조 당시 총리와 시 주석의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물밑 조율에 나선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앞두고 “한국민의 심정을 이해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며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강조했다. 취임식 참석 후에는 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셔틀외교’ 복원에 합의했다.



다만 같은 해 7월 후쿠다 내각이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간접 반영하면서 양국 관계가 냉각되기도 했다.

도쿄 명희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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