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움직여야 머리 좋아진다…‘VR 광선검’이 밝혀낸 학습의 비밀 [달콤한 사이언스]

유용하 기자
수정 2026-10-26 17:30
입력 2026-10-26 17:30
세줄 요약
- VR 광선검·주먹질 실험으로 학습 효과 검증
- 몸을 크게 쓰는 훈련이 정보 통합 판단 향상
- 규칙 기반 과제는 동작 방식 차이 거의 없음
1977년 개봉한 SF의 전설 ‘스타워즈’에서 제다이 견습생인 루크 스카이워크는 앞을 보지 못하게 한 훈련용 헬멧을 쓰고 광선검 하나로 날아드는 레이저를 막아내는 훈련을 받게 된다. 스승인 오비완 캐노비는 “눈은 너를 속일 수 있으니 믿지 말고 마음의 감각을 확장하라”고 말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SF 같은 이런 설정이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화 속 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연구자가 가상현실(VR) 속에서 광선검을 휘두르거나 주먹을 내지르며 몸을 움직이면 여러 단서를 종합해 판단하는 ‘감’이 더 빨리, 더 정확하게 길러진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미국 플로리다 아틀랜틱대 의생명공학과, 브라운대 인지·심리과학과 공동 연구팀은 머리가 판단을 끝낸 뒤 몸은 그 결과를 표현할 뿐이라는 오랜 통념과 달리 몸의 움직임이 학습 과정에 직접 관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즈’ 10월 24일 자에 실렸다.
미국 플로리다 애틀랜틱대 제공
길이 미끄러운지, 과일이 익었는지, 의료 영상 속 병변이 위험한지 판단하는 일은 모두 대상을 어느 무리에 넣을지 정하는 ‘범주 학습’에 속한다. 인지과학은 이를 머릿속 과정으로 보고 몸의 움직임은 결정을 내보이는 마지막 출력 단계로만 여겨왔다.
연구팀은 평균 21세의 남녀 160명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참가자들은 VR 헤드셋을 쓰고 의자에 앉아, 눈앞에 하나씩 나타나는 줄무늬 원반을 ‘A 무리’와 ‘B 무리’ 중 하나로 분류했다. 원반마다 줄의 굵기와 기울기가 조금씩 달랐다. 연구팀은 분류 기준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답할 때마다 뜨는 ‘정답’, ‘오답’ 표시만 보며 600번에 걸쳐 스스로 기준을 깨우쳐야 했다.
문제는 두 종류였다. 첫째는 ‘줄이 굵으면 A, 가늘면 B’처럼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규칙 기반’ 문제다. 기준만 눈치채면 바로 풀리는 머리로 푸는 문제에 가깝다. 둘째는 굵기와 기울기를 한꺼번에 따져야 하는 ‘정보 통합’ 문제다. 수박을 고를 때 두드리는 소리와 껍질 무늬, 꼭지 모양을 함께 보고 ‘잘 익었다’고 판단하는 것과 비슷하다. 숙련된 의사가 의료 영상 속 혹을 보고 ‘나쁜 것 같다’고 직감하는 것도 이런 종류다.
답하는 방법도 달리했다. 한 집단은 손가락으로 컨트롤러 방아쇠만 당겨 답했고 다른 집단은 팔을 크게 휘둘렀다. 1차 실험에서는 가상의 광선검으로 원반을 직접 베고, 2차 실험에서는 원반 대신 앞에 놓인 상자를 주먹으로 쳤다.
결과는 문제 종류에 따라 뚜렷하게 갈렸다. 말로 정리되는 규칙 기반 문제는 방아쇠를 당기든 팔을 휘두르든 성적이 비슷했다. 문제를 더 어렵게 바꿔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감’으로 익혀야 하는 정보 통합 문제에서는 팔을 크게 쓴 집단의 실력이 더 빨리 늘었고 최종 성적도 높았다. 2차 실험 훈련 막바지 정답률은 주먹 집단이 약 91%, 방아쇠 집단이 약 81%로 10%포인트 차이가 났다.
연구팀은 600번의 연습이 끝난 뒤 주먹 집단에게 “이제부터는 방아쇠로 답하라”고 방법을 바꾸고 실험했다. 주먹질이 답을 고르는 그 순간에만 도움을 준 것이라면 주먹을 못 쓰게 되자마자 성적이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정답률은 약 91%에서 89.5%로 거의 그대로였다. 몸을 크게 쓰며 연습하는 동안 실력 자체가 머릿속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손으로 여러 번 써가며 외운 영어 단어가 시험을 컴퓨터로 봐도 떠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런 차이는 두 종류의 문제를 푸는 뇌 부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규칙 기반 문제는 이마 쪽 뇌인 전전두엽이 주로 맡는다. 가설을 세우고 따져보는 ‘생각하는 뇌’다. 반면 정보 통합 문제는 뇌 깊숙한 곳에서 몸의 움직임과 습관을 배우는 ‘선조체’가 맡는다. 팔을 크게 움직이면 선조체에서 학습 신호 역할을 하는 도파민이 더 많이 나오는데, 이것이 이 부위의 학습을 부추겼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를 이끈 루크 로즈달 플로리다 애틀랜틱대 교수는 “이번 결과가 영상의학 판독이나 항공기 조종처럼 여러 정보를 종합해 패턴을 알아봐야 하는 전문 훈련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존 방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움직임을 더하는 것은 학습을 개선하는 간단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용하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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