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감옥을 지으라는 관광진흥법
수정 2026-10-21 01:08
입력 2026-10-20 20:42
외국 관광객 불만 1위는 숙박
창문 없는 호텔 지어야 하는
시대착오적 관광진흥법 손봐야
196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등록 외국인 수는 1200명을 겨우 넘었습니다. 한 해 방문 외국인도 1만명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체류 외국인은 300만명에 가깝습니다. 외국인 유학생은 30만명을 돌파했지요. 올해 외국인 방문객은 26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경이적입니다.외국인의 방문과 교류는 양적인 성장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보도되는 소식에 따르면 질적인 면에서도 어마어마한 실적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얼마 전 영국의 여행매체인 ‘타임아웃’이 종로3가를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 1위로 선정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서울이 해외 유학생들에게 새로운 파리가 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2026 세계 대학생 도시 순위’에서 서울이 1위에 올랐다는 글로벌 고등교육 평가기관 QS의 발표도 있었지요.
방문객 수의 엄청난 증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관광 인프라는 방문객 증가 속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관광공사에 설치된 ‘관광불편신고센터’ 접수 현황을 보면 그 실태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전체 신고 건수 중 숙박 관련 민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2023년 15.74%이던 비율이 올해 들어 38.36%로 폭증했다는 것입니다. K팝, K뷰티, K등산 등 여러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방문객이 늘어나고 있는 데 비해 숙박의 양과 질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숙박에 대한 불만이 많아진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숙박시설을 오피스텔 등으로 전환해 객실 수가 감소했지만, 높은 금리와 공사비 급등으로 신규 공급은 뒷걸음쳤습니다. 최근에는 관광호텔을 지으려고 해도 1995년에 제정된 관광진흥법의 규제에 묶여 호텔을 짓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지요. 국토의 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상 주거지역에는 아파트, 주택, 근린상가 등만 지을 수 있습니다. 예외적으로 관광진흥법에 의해 관광숙박시설을 지을 수 있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규제가 따릅니다. 고층으로 짓게 되면 호텔에 창문을 낼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호텔이 아닌 감옥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서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방에서 지내라고 한다면 과연 여행을 가게 될까요.
왜 위와 같은 규정을 두게 되었을까요. 20~30년 전의 관광호텔은 숙박이 아닌 유흥시설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관광호텔마다 룸살롱이나 나이트클럽을 두다 보니 불가피하게 고층에는 창문을 내지 못하게 했던 것이지요. 지금은 어떨까요. 유흥시설은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이젠 누구도 숙박시설에 유흥시설을 설치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규제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얼마 전 공직에 있다가 미국으로 연수를 다녀온 후배를 만났습니다. 2년 만에 서울에 돌아와 보니 가장 뚜렷한 변화 중 하나가 서울에 외국인들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근무하는 곳이 광화문 부근이다 보니 더 크게 실감할 수 있었을 테지요. 그러면서 미국에서 직접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제는 외국인들의 관심이 음식이나 문화, 화장품 같은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에 더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구체적인 생활 모습에 대해서도 관심이 커졌다’는 것이었지요. 다른 말로 하면 관광의 질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지난 30여년간 우리의 삶은 천지개벽 수준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규제는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광숙박시설에 대한 규제가 대표적인 예이지요. 과거가 미래를 발목 잡지 않도록 세세하게 살펴보아야 할 때입니다.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전 수원지검 1차장
2026-10-2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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