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 빌딩 두 곳 돌며 불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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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혁 기자
수정 2026-10-21 01:02
입력 2026-10-20 23:52

연쇄방화 혐의 70대 남성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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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대원들이 2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신명빌딩 3층에서 발생한 화재 잔불을 정리하는 등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역삼동 교차로를 중심으로 마주 본 두 건물에 7분 간격으로 불을 지른 혐의로 70대 남성을 체포했다. 이 화재로 심정지 환자 1명을 포함해 19명이 다쳤으며 시민 60여명이 자력으로 대피했다. 뉴시스
소방대원들이 2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신명빌딩 3층에서 발생한 화재 잔불을 정리하는 등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역삼동 교차로를 중심으로 마주 본 두 건물에 7분 간격으로 불을 지른 혐의로 70대 남성을 체포했다. 이 화재로 심정지 환자 1명을 포함해 19명이 다쳤으며 시민 60여명이 자력으로 대피했다.
뉴시스


“열기가 느껴지다가 갑자기 화염이 확 덮쳤어요. 그래서 서둘러 유리를 깨고 겨우 탈출했습니다.”

2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양빌딩 4층에서 탈출한 A씨는 화재 발생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그는 “복도 천장에 불꽃이 닿을 정도로 불이 크게 났다”면서 “동료들과 같이 급하게 나오는 과정에서 긁히고 찍혀 많이 다쳤고, 유리에 심하게 다친 분도 있다”고 말했다.

신명빌딩 맞은편에서 근무하던 50대 원모씨도 “펑 소리가 나더니 사람들이 창문에 매달려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창문에 여성과 남성이 각각 매달려 있었는데, 소방대원들이 여성을 먼저 구조하는 사이 남성은 살려 달라고 소리치며 연신 손을 흔들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사람들이 옆 벽을 두드리며 통곡하는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역삼동 일대는 역삼초교 교차로를 중심으로 대각선 130m 거리에 있는 두 건물에서 7분 간격으로 화재가 잇따르며 아수라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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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54분쯤 신명빌딩 3층에서 불이 난 데 이어 낮 12시 1분쯤 한양빌딩 4층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갑작스러운 화재에 건물 안에 있던 60여명의 직장인들은 황급히 대피했고, 곳곳에서 아찔한 탈출 장면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 두 건물에 불을 지르고 도주한 7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면서 추가 범행은 막을 수 있었다. 해당 남성은 지난 2022년에도 같은 건물에서 방화를 시도하다 구속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오후 4시 16분쯤 종로구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 인근에서 70대 남성 B씨를 검거했다. 경찰 조사 결과 B씨는 이날 오전 11시 이전 강서구 자택에서 기름통을 들고 나왔으며, 기름통을 들고 신명빌딩에 들어가는 모습이 인근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다. 범행 후에는 택시와 도보를 이용해 도주하다 혜화경찰서에 의해 체포됐다. 이후 수서경찰서로 압송된 B씨는 ‘범행을 언제부터 준비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 3일 됐다”고 말했다.

불이 난 두 건물의 3·4층에는 모두 특허법인이 입주해 있다. B씨는 2022년 12월에도 같은 건물에서 방화 시도를 하다 구속돼 특수협박죄로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B씨는 자신이 개발한 운동기구의 특허 출원 과정에서 갈등을 빚은 특허법인 사무실에 휘발유 2ℓ와 가스라이터, 가위 등을 준비한 채 찾아가 직원들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흉기로 위협하며 “사기 치지 마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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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통 들고 건물로… 외벽 매달리고 창문 깨고 ‘아찔한 탈출’
기름통 들고 건물로… 외벽 매달리고 창문 깨고 ‘아찔한 탈출’ 방화 용의자 70대 남성이 기름통을 들고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신명빌딩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남성은 신명빌딩, 한양빌딩 두 곳에 불을 지른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시민들이 신명빌딩에서 창문을 깨고 밖으로 탈출해 아슬하게 대피하는 모습.
연합뉴스TV·엑스(X) 캡처


경찰은 B씨가 과거와 같은 특허 관련 불만으로 범행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범행 동기와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번 화재로 심정지 환자 1명을 포함해 중상자 5명과 경상자 14명이 발생했다. “누가 불을 질렀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인력 259명과 소방차량 등 장비 75대를 동원해 화재 진압에 나섰다. 두 건물의 불은 오후 2시 20분쯤 꺼졌다.

신명빌딩 3층 특허법인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변리사 C씨는 복도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자가호흡을 회복했다. 함께 근무하던 C씨의 남편도 현장에 있다가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양빌딩에서 근무하는 D씨는 “이어폰을 끼고 일하느라 불이 난 줄도 몰랐고 화재경보도 듣지 못했다”며 “건물 뒤편 창문을 깨고 탈출했는데, 다행히 테라스에 떨어져 목숨을 건졌다”고 말했다.

화재 현장 주변에는 급박했던 순간의 흔적이 남았다. 신명빌딩 아래에는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과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불이 난 3층은 검게 그을렸고, 창틀과 내부 철제 구조물은 무너져 내렸다. 한양빌딩 후문에는 대피 과정에서 깨진 유리에 베인 것으로 보이는 핏자국이 곳곳에 남았다. 주변에는 여전히 매캐한 탄내가 맴돌았고, 두 건물에 입주한 카페 등은 손님이 빠져나가 텅 빈 모습이었다.

유승혁·이지 기자
세줄 요약
  • 역삼동 빌딩 두 곳 연쇄 화재 발생
  • 60여명 대피, 심정지·중상자 다수 발생
  • 70대 남성 방화 혐의로 검거
2026-10-2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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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건물에 불을 지른 70대 남성이 과거에도 같은 건물에 방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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