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대화 속 쏟아지는 무수한 질문…홍상수 ‘눈 둘 데가 없네’[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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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수정 2026-10-20 10:35
입력 2026-10-20 10:35
세줄 요약
  • 제주에서 10년 만에 엄마를 찾은 상희의 방문기
  • 대화와 내레이션만으로 가족의 거리와 감정 형성
  • 예술과 창작의 의미를 묻는 홍상수식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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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 영화 ‘눈 둘 데가 없네’의 한 장면. 영화제작전원사 제공
홍상수 감독 영화 ‘눈 둘 데가 없네’의 한 장면. 영화제작전원사 제공


서먹하고 불안정한 관계 속 대화가 제주도 거센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가지처럼 이리 휘고 저리 휜다. 72분의 상영 시간 동안 불편하면서도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런데 이걸 만들어내는 건 오로지 내레이션과 대화뿐.

21일 개봉하는 홍상수 감독의 ‘눈 둘 데가 없네’는 상희(김민희)의 2박 3일간의 부모님 방문기다. 부모가 어릴 적 이혼하면서 상희는 그동안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제주도에 정착해 펜션과 식당을 운영하는 엄마(최명길)를 10년 만에 남동생 상원(신석호)과 함께 찾은 터다.

상희와 동생, 그리고 엄마와 새아버지(권해효)의 대화가 영화를 이끌어간다. 대화 중간중간 상희의 내레이션이 그의 마음을 알려준다. 관객은 이를 통해 인물들의 관계를 파악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파악해야 한다. 대화 도중 튀어나오는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을 덧붙여가며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구성한다.

미술을 전공했던 상희는 과자 수입 회사에서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 짧은 영화들을 혼자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다. 엄마가 하는 식당은 대박이 났고, 거기서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새아버지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어머니를 우연히 만나 반했고, 지금껏 함께 살고 있다. 상희 눈에는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생활력이 강해 보이진 않는다. 시신을 곧바로 땅에 묻지 않고 임시로 관을 지상에 올린 뒤 덮어 두는 임시 무덤 ‘초분’에 관한 영화를 요즘 만들고 있다. 상희는 “다큐 촬영이 돈이 되느냐”고 묻고, 새아버지는 “그냥 찍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시간의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들이 대화 내내 이어진다. 이런저런 충고와 칭찬이 오가지만, 대화는 겉돌기만 한다. 엄마는 상희에게 “자주 와서 식당과 펜션 일을 돕고, 나중에 이걸 물려받는 것도 생각해보라”고 하는데 진심인지는 알 수가 없다. 새아버지가 데리고 온 딸(박미소)도 만나는데, 그는 이제 막 그림을 시작한 참이다. 엄마가 새아버지의 딸에게 작게나마 미술 사무실을 내줬다는 사실을 알고 상희는 “나한텐 아무런 지원도 안 해줬는데”라면서 내레이션을 통해 서운한 마음을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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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 영화 ‘눈 둘 데가 없네’의 한 장면. 영화제작전원사 제공
홍상수 감독 영화 ‘눈 둘 데가 없네’의 한 장면. 영화제작전원사 제공


성긴 그물 사이로 고기가 빠져나가듯, 대화의 조각들이 헤집은 관객들의 머릿속에선 수많은 질문이 이리저리 다닌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화로 구성한 내 머릿속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가치가 있는 것일까.

영화 제작에 대해 후반 상희가 만든 유튜브 영상을 통해 예술하는 자세에 대해 정의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보면서 상희는 말한다. “어려서부터 나는 눈 둘 데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꽃이 말을 했다. 나는 수수하다. 나는 조용하다. 그러나 언제나 뭔가를 좋아하고 있었다”고. 상희의 영상은 새아버지가 만드는 다큐처럼 돈이 안 되긴 매한가지다. 그러나 남보기엔 변변찮아 보이는 영화라도, 비판이 이어져도 상희는 이를 수용하면서 흔들리면서 꿋꿋이 나아간다. 마치 ‘예술은 이런 것’이라고 강변하는 듯하다. 작품과 사생활로 대중들에게 칭찬과 비난을 받고 있는 홍 감독의 마음이 배우 김민희의 내레이션에 덧입혀진다.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는 지난 8월 홍 감독에게 감독상을, 상희를 맡은 김민희에게 최우수 연기상을 안겼다. 영화제 측은 “영화의 모든 요소를 다루는 최고의 기량이 최고의 자유, 최고의 단순함, 그리고 최고의 지성과 만날 때, 그 결과로 세계, 예술, 타인, 그리고 우리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매혹적이고 깊은 영감을 주는 우화가 탄생한다”고 평했다.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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