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해수위, 해수부·항만공사 국정감사
EU·영국 제재 선박, 석유제품 선적 후 러시아로
여수·울산에서 日·싱가포르행 신고 후 목적지 변경
김용태 “국내법·유엔 제재 대상 아니어도 살펴야“
“제재 선박 특별관리 지정·출항 후 모니터링 필요”
유럽연합(EU)과 영국의 제재 대상 선박들이 국내 항만에서 석유제품을 싣고 신고 목적지와 달리 러시아로 운항한 사례가 확인되면서 당국의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내법이나 유엔 제재에 따른 입항 금지 대상이 아니더라도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선박에 대해서는 운항 경로를 면밀히 살펴 불필요한 오해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19일 해양수산부와 여수광양항만공사, 울산항만공사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은 영국과 EU의 제재 대상 선박들이 국내 항만에서 석유제품을 선적한 뒤 일본과 싱가포르 등을 목적지로 신고하고도 실제 러시아로 운항한 사례를 지적했다.
앞서 영국 가디언은 항만 기록과 선박 추적 데이터를 분석해 지난 7~8월 울산과 여수 등 국내 항만에서 선적된 석유제품 17만 6000t 이상이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 극동 지역으로 운송됐다고 보도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측에서 우리가 대러 제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했으나 청와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대러 제재와 수출통제를 일관되게 이행해 왔다”며 “사실과 다르며 부적절하다”고 일축했다.
울산항만공사가 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8월 라일라호와 아스토리아호 등 유조선 2척이 울산항에서 석유제품을 선적한 사례는 총 3건이다. 라일라호는 두 차례에 걸쳐 경유 5만 7468t을 선적했으며, 아스토리아호는 항공유 1만 700t을 실었다. 라일라호의 두 번째 운항과 아스토리아호는 입항신고서에 차항지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기재했으나, 출항신고서에는 일본으로 기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수광양항만공사는 지난 8월 청천호가 여수 W구역에서 석유제품을 실은 뒤 싱가포르를 차항지로 신고하고 출항한 사실을 확인했다. 청천호는 8월 3일 입항 당시 적재량이 3799t이었으나 7일 출항 때는 3만 3991t으로 증가했다. 가디언은 청천호가 다른 유조선으로부터 석유제품을 넘겨받아 러시아로 운항했다고 보도했다.
최관호 여수광양항만공사 사장은 ‘해당 선박이 러시아로 간 사실을 우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느냐’는 김 의원의 질문에 “저희 입출항 신고서에는 차항지가 싱가포르로 기재되어 있었다”며 “나중에 저희는 기사를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에 문제 된 석유제품 운송이 그 자체로 국내 대러 수출통제나 유엔 제재 위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김 의원은 “아쉬운 점은 지금 대러 제재 품목들은 북한이 러시아에 1차 파병하기 전후에 우리가 제재 대상을 설정했던 거고, 당시에는 석유제품들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하지만 북한의 러시아 2차 파병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항만에서 불투명한 석유제품 교역이 발생한 것에 대해서 굉장히 저는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선박들은 우리 사장님들 말씀하셨던 것처럼 항만공사에 제출한 출항 신고서의 목적지를 일본하고 싱가포르라고 신고했다. 그런데 조금 전 말씀했던 것처럼 가디언지라든지 선박 추적 사이트 데이터를 보면 실제로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것으로 확인됐다”며 “목적지를 허위로 신고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박이 출항한 뒤 기상 악화 등으로 목적지를 변경할 수 있지만, 제재 대상 선박의 목적지 변경이 반복되는 경우에는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의원은 “하루에도 수백, 수천 척의 선박을 우리 항만 당국이 일일이 추적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일반 어선이나 상선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배들은 이미 영국이라든지 유럽연합의 제재 명단에 올라 있는 요주의 선박들”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우리나라 제재를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국제사회가 예의주시하는 제재 선박들이 입항했으면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하고, 출항 후에는 목적지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추적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야 우리 항만이 제재 회피용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불필요한 오해도 피할 수 있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해수부가 외교부나 관세청 등과 공조해서 최소한 우리의 우방국인 미국과 영국, EU의 제재 대상 선박들이 우리 한국에 입항하면 이를 필터링하고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된다”며 “입출항을 막자는 게 아니라 최소한 출항지를 허위 기재하거나 우리 항만 당국을 우롱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최 사장도 “관련 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해서 그런 일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손지은·박효준 기자
세줄 요약
- 제재 선박, 국내 항만서 석유제품 선적 후 러시아행
- 일본·싱가포르 신고와 실제 항로 불일치 사례 지적
- 정부, 국내 제재 위반은 아니나 관리 강화 필요성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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