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금형 공장에서 세계 HBM 시장까지…한미반도체 일군 곽노권 [창업주의 비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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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나리 기자
민나리 기자
수정 2026-10-19 10:58
입력 2026-10-19 10:51

고 곽노권 한미반도체 창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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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권 한미반도체(당시 한미금형) 회장이 1981년 10월 제 1회 국제금형 및 관련기기전 전시회에 참가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한미반도체 제공
곽노권 한미반도체(당시 한미금형) 회장이 1981년 10월 제 1회 국제금형 및 관련기기전 전시회에 참가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한미반도체 제공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작은 금형 부품 하나도 해외에서 들여와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 한국의 반도체 장비 산업은 사실상 불모지나 다름없었죠. 미국 반도체 기업 모토로라에서 13년 넘게 일하며 기술을 익힌 곽노권(1938~2023) 한미반도체 창업주는 이런 현실을 바꿔 보고 싶었습니다. 마흔둘의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 반도체 금형을 만드는 사업에 뛰어든 이유입니다.

그가 세운 한미금형은 국내 최초의 토종 반도체 장비업체로 꼽힙니다. 곽 회장은 직접 개발한 장비를 들고 해외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외국 기업들과 경쟁했습니다. 작은 회사였지만 한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컸습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한미반도체가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로 성장하기까지 그 중심에는 기술에 대한 곽 회장의 집념이 있었습니다.

마흔둘에 창업…회사 소파에서 밤새운 기술자곽 회장은 1938년 태어나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천전기공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반도체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67년 모토로라코리아에 입사하면서입니다. 이곳에서 13년 6개월 동안 반도체 공정과 장비 기술을 익혔습니다. 당시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는 물론 정밀 금형까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곽 회장은 자신이 배운 기술을 국내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2010년 언론 인터뷰에서는 모토로라에서 쌓은 경험을 제대로 한번 쏟아 넣어 보고 싶었다고 창업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1980년 3월 퇴직금과 가족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보태 서울 성수동에 한미금형을 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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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권 한미반도체 창업주
곽노권 한미반도체 창업주


처음 도전한 제품은 반도체 칩을 보호하는 포장재를 만들 때 사용하는 정밀 금형이었습니다. 핵심 부품인 ‘캐비티 바’는 1000분의 1㎜ 수준의 정밀도가 요구됐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만들기 어렵다고 여겨졌지만 곽 회장은 직접 개발에 나섰습니다. 회사 소파에서 잠을 청할 정도로 연구에 매달린 끝에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첫 고객은 곽 회장이 몸담았던 모토로라코리아와 반도체 조립·검사 업체인 시그네틱스코리아였습니다. 모토로라는 한미금형 설립 전부터 곽 회장에게 제품 공급을 요청할 만큼 그의 기술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외국계 기업에 납품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문이 늘면서 창업 첫해인 1980년 12월에는 공장을 경기 부천으로 옮겼습니다.

당장의 제품 개발과 납품에 몰두하다 놓친 것도 있었습니다. 바로 특허였습니다. 곽 회장은 훗날 초기 기술들을 제대로 특허로 등록하지 못한 일을 아쉬워했습니다. 당시 특허를 모두 확보했더라면 이른바 ‘특허괴물’이 됐을지도 모른다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3t 장비 싣고 해외 전시회로…세계시장 개척첫 제품이 성공을 거두자 곽 회장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국내에서 반도체 장비 수요가 아직 많지 않았던 만큼 회사를 키우려면 해외 고객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주도하던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곽 회장이 택한 방법은 직접 제품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1980년대 홍콩과 일본, 말레이시아 등에서 열리는 반도체 전시회를 부지런히 찾아다녔습니다. 무게가 3t에 달하는 장비를 비행기에 싣고 운송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국 업체가 거의 보이지 않던 전시장에서 곽 회장은 태극기를 내걸고 제품을 소개했습니다. 훗날 작은 회사지만 국가대표라는 마음으로 전시회에 참가했다고 회고할 만큼 자부심이 컸습니다.

해외 고객이 늘면서 사업 기반도 넓어졌습니다. 1986년 인천 서구 가좌동으로 본사와 공장을 옮겼고, 이듬해 말레이시아와 198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해외사무소를 설치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삼성반도체와 현대전자, 아남산업, 금성반도체 등이 주요 고객사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현대전자는 훗날 하이닉스반도체를 거쳐 지금의 SK하이닉스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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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오른쪽 두 번째) 전 대통령이 2004년 1월 20일 인천 서구 가좌동 한미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곽노권(세번 째) 한미반도체 창업주의 설명을 들으며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노무현아카이브 제공
노무현(오른쪽 두 번째) 전 대통령이 2004년 1월 20일 인천 서구 가좌동 한미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곽노권(세번 째) 한미반도체 창업주의 설명을 들으며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노무현아카이브 제공


곽 회장은 금형 제작에 머물지 않고 반도체 생산을 자동화하는 장비 개발에도 나섰습니다. 1985년 금형을 자동으로 장비에 올리는 설비를 양산한 데 이어 1997년에는 반도체 패키지를 절단하고 검사하는 ‘소잉 앤드 플레이스먼트’를 선보였습니다. 이후 ‘비전플레이스먼트’로 발전한 이 장비는 여러 공정을 한 번에 처리해 생산성을 높인 제품으로, 한미반도체의 대표 장비가 됐습니다. 회사에 따르면 비전플레이스먼트는 2004년부터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해 왔습니다.

사업이 금형에서 반도체 장비로 확대되면서 회사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1996년 ‘한미로’를 거쳐 2002년에는 지금의 ‘한미반도체’가 됐습니다. 2005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당시에는 매출의 70%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고 세계 110여개 기업과 거래할 만큼 성장했습니다.

불황에도 해고 대신 교육…대기업과 특허 분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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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권 한미반도체 창업주
곽노권 한미반도체 창업주 한미반도체 제공


반도체 장비업체를 운영하며 곽 회장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불황에 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반도체 제조사들이 설비투자를 줄이면 장비 주문부터 끊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는 경기가 나쁘다고 인력을 줄이기보다 다음 호황을 준비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한미반도체는 숙련된 직원들을 유지하며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오히려 첨단 가공장비를 들여오고 공장을 증설했습니다. 다른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는 동안 설비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활용했습니다. 경기가 회복됐을 때 주문을 감당하려면 생산시설뿐 아니라 이를 다룰 기술자들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실제로 2010년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자 주문이 몰려들었습니다. 연초부터 상반기 생산 일정이 모두 채워질 정도였습니다. 곽 회장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불황 때 준비를 잘 갖춰야 호황 때 공격경영을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술을 지키기 위한 싸움도 있었습니다. 한미반도체는 2011년 삼성전자 자회사 세크론을 상대로 반도체 장비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듬해 9월 법원은 1심에서 세크론의 특허 침해를 일부 인정하고 약 21억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특허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던 회사가 대기업을 상대로 자체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법적 대응에 나선 것입니다.

곽 회장은 2013년 반도체 장비 국산화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습니다. 외국에서 기술을 배워 작은 금형 회사를 차린 지 33년 만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남긴 기업…AI 시대 맞아 새로운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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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반도체가 영국 팝아트 작가 필립 콜버트와 협업해 제작한 옥외광고 이미지. 서울 올림픽대로 동작대교 남단에 설치됐다. 한미반도체 제공
한미반도체가 영국 팝아트 작가 필립 콜버트와 협업해 제작한 옥외광고 이미지. 서울 올림픽대로 동작대교 남단에 설치됐다. 한미반도체 제공


곽 회장에게는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손이라는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곽한소 선생은 구한말 면암 최익현의 의병 활동에 참여한 인물로, 2015년 건국포장을 받았습니다. 곽 회장은 생전에 선조의 독립운동 관련 기록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평생 일군 회사는 아들 곽동신 회장에게 이어졌습니다. 1998년 입사한 곽동신 회장은 2007년부터 부친과 함께 대표이사를 맡았습니다. 곽노권 회장은 2023년 12월 별세했습니다. 이듬해 2월 한미반도체는 일본인 소장가가 보유하던 안중근 의사의 유묵 ‘인심조석변산색고금동’을 경매에서 13억원에 낙찰받았습니다. 회사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서 애국정신을 강조해 온 창업주의 뜻을 기리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미반도체는 곽동신 회장 체제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습니다. 2017년 SK하이닉스와 공동 개발한 고대역폭메모리(HBM)용 ‘TC 본더’가 대표적입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은 고성능 메모리로, TC 본더는 칩을 열과 압력으로 정밀하게 접합하는 장비입니다. 한미반도체는 이를 앞세워 SK하이닉스에 이어 미국 마이크론으로도 고객사를 넓혔습니다.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투자가 급증하면서 한미반도체의 실적도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해 매출 5767억원, 영업이익 2514억원을 기록했고, 올해 2분기에는 매출 2511억원과 영업이익 1303억원으로 분기 기준 최대 매출을 올렸습니다. 지난 6일에는 삼성전기로부터 약 245억원 규모의 AI 반도체 기판 제조용 장비를 수주했습니다. 과거 특허 소송을 벌였던 삼성그룹과 장비 공급 협력을 넓힐 가능성도 생긴 셈입니다.

한미반도체는 차세대 본더 개발과 생산시설 확충, 새로운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곽 회장이 외국산 금형을 국산화하기 위해 회사를 세운 지 46년. 이제 한미반도체는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사용하는 첨단 장비를 공급하며 기술 경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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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의 비밀노트.서울신문
창업주의 비밀노트.서울신문


민나리 기자
세줄 요약
  • 모토로라 경력 바탕, 성수동서 한미금형 창업
  • 정밀 금형 국산화와 해외 전시회 개척
  • HBM 본더로 AI 시대 성장 동력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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