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처 호소에, 우발 범죄라… 관계성 범죄 ‘솜방망이 처벌’ 부추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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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리 기자
수정 2026-10-18 17:39
입력 2026-10-18 17:39

가족·연인 등에 의한 강력범죄
가까운 사이라 처벌 불원 많아
피해자 진의 확인 제도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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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이미지. 서울신문DB
법원 이미지. 서울신문DB


환청, 피해망상 등을 이유로 수년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70세 부모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던 A씨는 지난 2024년 2월 자신의 어머니에게 “나가서 살게 해 달라”며 돈을 요구하다 거절 당하자 욕설을 하며 폭행했다. 이를 목격한 아버지 B씨는 A씨를 말리려고 몸싸움을 하다 넘어졌고, 나무 식탁에 몸을 부딪쳐 그대로 숨졌다. 당시 B씨는 심장 및 암 수술을 받고 퇴원한지 며칠 되지 않아 극도로 몸이 쇠약한 상태였다.

1심을 심리한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정신질환으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우발적인 범죄였고, 모친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존속폭행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5일 가족·연인·동료 등에 의한 ‘관계성 범죄’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다는 각오로 특단의 대책을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한 가운데, 관계성 범죄의 형량이 유사한 동종 범죄 대비 낮은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연결돼있는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 측에서 선처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우발적 범죄의 비율도 높은 까닭이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관계성 범죄의 대부분이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 리걸테크 업체 엘박스의 판결문 데이터베이스(DB)에 따르면 지난 1∼9월 유죄가 선고된 스토킹처벌법 위반, 가정폭력처벌법 위반, 존속폭행 혐의 사건 1심 판결 2058건 중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406건(19.7%)에 그쳤다. 나머지 약 80%는 징역형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이었다.

김재호 법무법인 서울 변호사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감정적으로도 연결돼있어 가까운 사이에서의 강력범죄일수록 엄벌을 요청하는 경우가 드물다”면서 “생계 등 현실적인 이유로 처벌 불원을 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같은 양상은 교제폭력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C씨는 지난해 9월 연인 D(44)씨의 자택 주차장에서 다투던 중 격분해 D씨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살인미수)로 재판에 넘겨졌다. C씨는 싸움이 격해지자 자신의 승용차 트렁크에서 흉기를 꺼내 두려워 도망치는 D씨를 쫓아가 얼굴과 목을 흉기로 그었다. 범행 2개월 전에는 외도를 들켜 D씨와 다투자 흉기를 꺼내 D씨의 목에 들이대며 “네가 못 믿으면 같이 죽자”고 협박한 혐의(특수협박)도 받았다.

1심을 맡은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피고인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피해자가 처벌 불원의 의사를 표시했다”며 C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다만 피해자의 선처 의사를 일률적으로 배제하기보다는 진의 파악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김 변호사는 “관계성 범죄 사건은 재판부가 피해자 비공개 신문기일을 지정하도록 해 처벌 불원 의사의 진의를 확인하는 절차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진수 법무법인 진수 대표변호사는 “처벌 불원의 법적 효과를 당사자가 명확히 인식하도록 전문가 법률 자문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슬아 법무법인 대진 변호사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지속적인 신뢰관계나 경제적·정서적 의존관계가 있는 범죄에선 피해자 처벌 불원 의사를 일반적인 합의와 동일하게 평가하기 어렵다”면서 “처벌 불원을 기계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그 의사가 어떤 관계와 상황에서 형성됐는지 더 엄격하고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리·박은서 기자
세줄 요약
  • 관계성 범죄, 선처 호소와 우발성으로 형량 낮아짐
  • 존속폭행치사·교제폭력 사건, 집행유예 선고 논란
  • 처벌 불원 진의 확인 위한 제도 보완 필요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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