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대북 확성기 만능론의 맹점들
강병철 기자
수정 2026-10-05 00:50
입력 2026-10-04 23:56
확성기로 긴장 고조·사회 혼란 우려
11년 전과 달리 北 ‘오물 풍선’ 가능
전시·사변 비상사태 원할 국민 없어
북한군 지뢰 폭발로 우리 장병 3명이 다친 뒤 많은 사람들이 시급한 ‘상응 조치’는 대북 확성기 재설치라고 믿는 모양이다. 2015년 목함 지뢰 사건 당시 박근혜 정부는 대북 확성기를 즉각 재가동했고, 그 결과 북한은 유감 표명까지 하며 회담 테이블로 나왔다. 확성기 재설치를 주장하는 쪽은 ‘남한의 강경 대응→북한의 사과→재발 방지’의 프로세스가 이번에도 작동하리라 믿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지금 생각처럼 2015년 목함 지뢰 사건의 해결 과정이 그렇게 단순하진 않았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철저한 정보 통제를 추구하는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 성가신 조치임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당시 북한이 곧장 두 손 들고 회담장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대북 확성기 설치론자들은 방송 재개와 남북 협상 사이에 있었던 긴장 상태와 사회적 혼란은 모두 잊은 모양이다.
지뢰 도발에 정부가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은 비무장지대(DMZ) 철책 이남 등으로 포탄를 날렸다. 여기 맞서 우리 군은 DMZ 북쪽으로 29발의 포탄을 쐈다. 그날 코스피 지수는 2.01% 하락해 1876.07로 내려 앉았다. 2년내 최저가였다. 예비군들은 SNS에 장농 속 전투복 사진과 함께 “불러만 달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접경지 주민들은 경제 활동을 중단했고, 전국의 공무원들은 내내 비상 대기를 했다. 확성기 방송 재개 이후 남북 회담 타결까지 약 2주일간 대한민국 상황이 그랬다.
그래도 그때는 북한이 두 손을 들었으니 다행이었다. 당시 북한은 확성기 방송에 맞서 처음에는 대남 방송을 개시했다. 그러다 포탄을 날렸고 다른 방법이 없으니 회담장으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북한은 대북 확성기에 대응하는 회색지대 도발 수단을 만들어냈다. 바로 오물 풍선이다.
북한은 윤석열 정부 때인 2024년에만 33차례 오물 풍선을 날렸다. 점점 정교해진 오물 풍선은 수도권 상공까지 나타났고, 급기야 2024년 10월 24일에는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상공까지 나타나 삐라를 뿌렸다. 그날 대통령실에선 한·폴란드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원점 타격’을 주장하고, 윤석열 정부가 북한에 무인기를 날린 것도 명분은 오물 풍선 때문이었다.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는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중단됐고,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고 대북 전단을 금지한 이재명 정부 들어서는 한 차례도 없었다.
대북 확성기는 우리 측에 미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면 전방 부대는 긴장도와 피로도가 가중된 상태로 북한의 국경 요새화 작업까지 대응해야 한다. 확성기 소음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국회에서 무릎을 꿇었던 접경지대 주민들의 일상도 다시 무너질 것이다.
2015년 목함 지뢰 사건 당시 대응을 주도했던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북한과 1대1로 전쟁하면) 북한은 멸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똑같은 질문에 “우리가 집니다”라고 답할 장병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북한이 싸워 멸망시켜야 할 대상인가라는 질문의 답과 별개로,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또 다음 세대에게 어떤 고통을 남겨줄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방법을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에 남북 군사회담과 종전 다자 협의를 제안하고, 북미 대화를 위한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기꺼이 자처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
대북 확성기 재설치 주장은 그런 맥락과 노력을 무시하는, 남북 대결 구도를 고착화하려는 측의 기계적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확성기 방송 재개로 북한이 포탄과 오물 풍선을 날리고 여기에 남한도 더 강한 상응 조치로 맞선다면 한반도 정세는 다시 윤석열 정부 때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나쁠 가능성이 큰데, 그러면 정말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진영을 떠나 그 상황을 원하는 국민이 어디 있나.
강병철 정치부장
2026-10-0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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