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쌓여 독창적 기술력으로…5평 사무실서 ‘K뷰티 산실’ 키워낸 한국콜마 [창업주의 비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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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이 기자
김현이 기자
수정 2026-09-07 15:30
입력 2026-09-07 15:30

화장품 ODM 국내 도입한 윤동한 창업주

독후감 숙제를 내주는 회장님이 있습니다. 학교도, 출판사도 아닙니다. 올해 자산 5조원이 넘는 대기업 반열에 든 국내 최초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회사, 한국콜마 창업주 윤동한(79) 회장 이야기입니다.

지난 4일 기준 한국콜마에 등록된 독후감상문은 22만 3018건에 달합니다. 모든 직원이 1년에 6권씩 독후감을 제출해야 합니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직원을 키우기 위해 윤 회장이 독서경영을 제도화한 겁니다. 그는 “질문만 잘 던져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사람은 질문을 잘 만들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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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열린 ‘이순신의 위대한 경영’ 출판기념회에서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북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콜마 제공
지난 6월 열린 ‘이순신의 위대한 경영’ 출판기념회에서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북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콜마 제공


질문의 힘은 실제 연구개발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비타민C가 피부에 좋다는데 시즌 상품으로 낼 수 없을까요”가 아니라 “비타민C는 물에 들어가면 속성이 변하는데, 어떻게 보존할 수 있을까요”가 좋은 질문이라는 게 윤 회장의 설명입니다.

이 질문에서 출발해 한국콜마는 캡슐로 비타민C의 속성을 유지시키는 ‘나노캡슐레이션’ 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특허를 냈고, 2013년 정부로부터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됐습니다. 화장품 제형 등에 565개 특허를 보유한 한국콜마의 기술력은 직원들의 사고를 열어주려 한 윤 회장의 오랜 노력이 쌓인 결과입니다.

책 한 줄이 열어준 창업의 길책은 학벌 콤플렉스로 고뇌하던 젊은 시절 윤 회장에게 기업가의 길을 열어준 열쇠였습니다. 1947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며 5남매의 가장이 됐습니다. 장학금을 받고 영남대(당시 대구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1970년 농협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시험에서 1등을 해도 학벌 좋은 동기들에 밀려 승진과 연수에서 탈락을 거듭했고, 가장이라는 책임에 고교 동창의 미국 유학 제안도 뿌리쳐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손에 잡힌 책에서 읽은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는 미국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의 문장이 마음을 다잡게 했습니다. 유리천장을 깨려면 직접 창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습니다.

작은 기업에서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1974년 당시 중소기업이었던 대웅제약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현장과 영업을 두루 거치며 입사 15년 만에 최연소 부사장에 올랐습니다. 외국계 제약사의 최고경영자(CEO) 제안과 대웅제약 사장 자리까지 모두 마다하고 회사를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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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한(왼쪽) 회장이 1990년 창업 초기 한국콜마 공장 부지를 둘러보고 있다. 한국콜마 제공
윤동한(왼쪽) 회장이 1990년 창업 초기 한국콜마 공장 부지를 둘러보고 있다. 한국콜마 제공


제약의 원칙을 화장품에, 한국콜마의 탄생마흔셋, 두 아이의 아빠였던 윤 회장은 1990년 5월 직원 네 명과 함께 일본콜마와 합작으로 한국콜마를 세웠습니다. 그는 창업을 준비하던 중 외국 잡지에서 우연히 제조업자개발생산(ODM)이라는 사업 모델을 접하고 국내 화장품 업계 도입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당시 국내 화장품 기업은 개발부터 제조, 마케팅, 판매까지 한 회사가 도맡는 구조였지만, 선진국에서는 제조와 유통이 분리돼 있었습니다. 윤 회장은 제조에 전문성을 가진 기업과 브랜드·유통에 강점을 가진 기업이 협력하면 산업 전체가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15년간 윤 회장이 제약업계에서 체득한 건 철저한 품질관리와 원칙이었습니다. 작은 오류도 소비자 건강과 직결되는 산업 특성상 원료부터 제조 공정까지 엄격한 기준을 뒀고, 그는 이 시스템을 피부에 직접 닿는 화장품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창업의 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충남 연기군(현 세종시)의 5평 남짓한 창고가 사무실이었는데 월급을 제때 주기 어렵거나 전기가 끊길 위기에 놓인 적도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기 거래처로부터 세금계산서 없이 거래하자는, 탈세의 일종인 ‘무자료거래’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윤 회장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한 번의 예외가 열 번이 되고, 결국 회사 전체가 잘못된 방식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습니다.

그는 “사업이 망하는 것보다 원칙을 잃는 것이 더 두려웠다”고 말합니다. 이런 원칙주의는 그의 경영철학인 ‘우보천리’(牛步千里)와 맞닿아 있습니다. 소걸음처럼 느리더라도 자신의 속도로 꾸준히 나아가면 결국 천 리를 갈 수 있다는 뜻으로, 윤 회장은 빠른 성과보다 흔들리지 않는 방향과 지속적인 실행을 중시하는 태도를 지켰습니다.

‘투웨이케이크’부터 ‘선스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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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마 미국 제2공장에서 현지 직원이 화장품을 제조하고 있다. 한국콜마 제공
콜마 미국 제2공장에서 현지 직원이 화장품을 제조하고 있다. 한국콜마 제공


한국콜마가 업계에 이름을 알린 결정적 계기는 제품력이었습니다. 화장품 연구개발에 전력을 쏟은 끝에 국내 최초로 건식·습식 두 가지 타입을 담은 파운데이션 ‘투웨이케이크’를 개발해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990년대 여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대기업 생산 의뢰도 크게 늘었습니다. 이후 BB크림, 고체형 유아 파우더, 스틱형 자외선 차단제 등 차별화된 제형을 잇따라 대중화시키며 국내 화장품 트렌드를 주도했습니다.

윤 회장은 창업 이후 줄곧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실적이 좋아질 때도 생산량 확대에만 집중하지 않고, 다음 세대 제품을 준비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투자했습니다. 현재 한국콜마는 전체 임직원의 약 30%를 연구인력으로 두고, 매출의 5~6%가량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국내 최초 화장품·의약품·건강기능식품 융합 연구센터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을 출범시켰습니다. 콜마의 연구소는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을 빠르게 개발하는 공간을 넘어 시장 변화를 예측하고 새로운 제형과 소재를 발굴하는 핵심 성장 거점입니다.

미국 콜마 본사도 집어삼킨 ‘K뷰티 산실’ODM 사업의 핵심은 고객사와의 동반성장입니다. 현재 한국콜마는 4800곳이 넘는 국내외 고객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한국콜마는 자체 브랜드를 앞세우기보다, 다양한 고객사의 브랜드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제품 개발과 생산을 지원했습니다. ‘1사 1처방’ 원칙 아래 고객사가 원하는 콘셉트, 소비자가 선호하는 사용감, 시장에서 주목받는 성분과 제형을 함께 연구하며 제품 기획부터 처방 개발, 디자인, 생산까지 긴밀하게 협력했습니다.

이 덕분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추기 어려운 기업도 새 브랜드를 선보일 수 있었고, 이는 국내 인디 브랜드가 글로벌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금의 K뷰티 생태계로 이어졌습니다. 일례로 한국콜마와 구다이글로벌이 2021년 함께 개발한 ‘조선미녀 맑은쌀 선크림’은 미국 아마존 블랙프라이데이 선크림 카테고리 1위를 기록하며 문턱 높았던 미국 뷰티 시장에서 K뷰티 흥행의 시작을 알린 신호탄 같은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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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한(왼쪽 세번째) 한국콜마 회장과 신입사원들이 2017년 4월 경기 여주에서 나무를 심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콜마 제공
윤동한(왼쪽 세번째) 한국콜마 회장과 신입사원들이 2017년 4월 경기 여주에서 나무를 심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콜마 제공


이런 기술력을 발판으로 한국콜마는 화장품을 넘어 건강기능식품, 제약 분야로도 영역을 넓혔습니다. 건강기능식품 ODM 기업 콜마비앤에이치, 제약사 HK이노엔 등 화장품에서 시작된 연구개발 역량이 종합 뷰티헬스기업으로 확장하는 토대가 된 셈입니다.

2022년 한국콜마는 창립 32년 만에 미국 글로벌 본사로부터 ‘콜마’(KOLMAR) 브랜드의 전 세계 상표권을 100% 인수했습니다. 화장품·건강기능식품·의약품 업계에서 한국 기업이 글로벌 본사의 브랜드 상표권을 사들인 첫 사례였습니다.

올해 4월에는 국내 화장품 ODM 업계 최초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대기업집단에 신규 지정됐습니다.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 1조 5893억원, 영업이익 1892억원을 내면서 실적도 고속 성장 중입니다. 연간 기준 생산능력은 8억 9000만개로 지난 2023년 당시 3억7000만개에서 2.4배 늘었습니다.

소걸음으로 걸어온 천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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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한(왼쪽) 한국콜마 회장은 2016년 10월 일본의 한 미술품 중개상으로부터 고려 불화인 ‘수월관음도’를 25억원에 매입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당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기증식 및 언론공개회에서 윤 회장과 이영훈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수월관음도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울신문DB
윤동한(왼쪽) 한국콜마 회장은 2016년 10월 일본의 한 미술품 중개상으로부터 고려 불화인 ‘수월관음도’를 25억원에 매입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당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기증식 및 언론공개회에서 윤 회장과 이영훈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수월관음도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울신문DB


사업이 커지고 해외로 뻗어나가는 동안에도 윤 회장은 ‘함께 가는 성장’이라는 원칙을 놓지 않았습니다. 평소 임직원들에게 겸손과 적선을 강조하는 그는 퇴사하려는 직원과 직접 ‘퇴직 면접’을 보고,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이기적인 태도가 엿보이는 지원자는 뽑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업 밖에서의 실천도 이어졌습니다. 2016년에는 일본의 한 미술품 중개상으로부터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를 25억원에 사들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귀중한 문화유산이 해외에 머물지 않고 국민 모두가 함께 감상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2017년 동료 기업인들과 사재를 모아 설립한 ‘서울여해재단’에서는 이순신의 리더십을 배우는 ‘이순신학교’를 운영하고 있고,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상징이던 무궁화 흔적을 복원해 2022년 경기 여주에 ‘콜마 무궁화 역사문화관’을 열었습니다.

윤 회장이 생각하는 기업의 성장은 혼자 앞서가는 것이 아닙니다. 임직원과 고객사, 협력사와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해야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토끼걸음으로 백 리를 가는 삶보다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가는 삶이 더 가치 있다.” 윤 회장이 즐겨 언급하는 말입니다. 소걸음으로 가는 천 리에는, 혼자보다 함께 걷는 동행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김현이 기자
세줄 요약
  • 독후감 경영으로 질문 문화 정착
  • 5평 사무실 출발, 원칙주의 창업
  • ODM 기술력으로 K뷰티 생태계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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