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은 미국 스탠퍼드대다. 박사과정 재학 중 학생들에게 고전인문학을 가르쳤다. 진로 이야기가 나오면 대답은 세 갈래로 좁혀졌다. 창업과 빅테크, 금융. 이따금 로스쿨. ‘국가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학생을 만난 기억은 없다. 그 말은 그 세계의 어휘에 없었다. 다른 강의실은 청주에 있다. 공군사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군 복무를 대신했는데, 제복 입은 스무 살 청년들과 ‘나라를 지킬 수호자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라는,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질문을 함께 읽었다. 그들에게 ‘너의 재능은 무엇을 위해 있는가’는 토론 주제가 아니었다. 전제였다.
두 강의실의 젊은이들은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비슷한 또래, 비슷한 총명함. 다른 것은 하나였다. 자기 재능의 용도에 대한 상상의 지도. 한쪽에는 ‘국가’라는 지명이 아예 없었고, 다른 쪽에는 그것이 한복판에 있었다.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재능의 쓸모를 어떻게 가르치는가. 이 글은 그 질문을 던지고 있는 팔란티어 창업자 알렉스 카프의 이야기다.
명상과 태극권을 즐기는 이 곱슬머리 CEO는 독일 괴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실리콘밸리의 철학자’다. 그는 저서 ‘기술공화국’에서 미국이 방향을 잃었다는 진단과, 기술이 다시 국가와 공동체에 복무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이는 이상주의적인 청사진만은 아니다. 그가 그리는 나라, 바로 한국 아닌가.
카프는 미국 최고의 인재들이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으로 몰려가는 동안, 정작 중요한 산업은 버려졌다고 우려한다. 배를 만들고 반도체를 만드는 일은 미국에선 지루하거나 골치 아픈 일로 취급된다고.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대규모 방산 계약이 성사될 때마다 많은 국민이 환호한다. 울산과 거제의 도크를 가득 채운 배들을 보며 마음이 웅장해지지 않을 국민은 드물다.
왜일까? 우리는 안다. 산업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는 것을. 산업이 대학과 병원까지 운영하는 사회의 위험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받아들여 온 것은 힘없는 나라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이 아닐까.
플라톤은 청주에서 더 잘 읽혔다. 스탠퍼드에서 ‘국가’는 분석의 대상이었지만, 청주에선 거울이었다. ‘국가’의 영문 제목은 ‘The Republic’이다. 카프가 쓴 책의 원제는 ‘The Technological Republic’이다. 이 우연이 가르쳐 준 교훈은 고전은 대답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이미 살아 있는 대답에 문장을 입혀 준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늘 밖을 본다. 그런데 미국 최고 기업을 이끄는 철학자가 그리는 이상 국가는 정작 한국을 닮아 있다. 산업이 나라를 지킨다는 카프의 언어는, 한국인에게는 번역이 필요 없는 언어다. 물론 한국에도 그늘이 있고, 그늘을 직시하는 것 역시 공화국의 일이다. 다만 이것 하나는 말해도 되겠다.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카프에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총각김치 말고 갓김치의 맛도 소개하고 싶다.
김현집 팔란티어 실행 전략가
이미지 확대
김현집 팔란티어 실행 전략가
2026-09-07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